2020. 5. 5. 04:31ㆍ별 일 없이 산다
국경은 단호하게 닫혔다.
3월 중순, 처음으로 전면적 국가 봉쇄(lockdown) 와 24시간 통금이 내려졌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으니 굉장히 당황스럽기만 했던 것 같다. 2박 3일박3일 출장으로 해외에 나간 요르단인이건, 요르단에 잠깐 들어와 있었던 외국인이건 상관없이 국경은 단호하게 닫혔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사연들은 드라마로 만들어도 몇 시즌이 나올 정도로 기구했고 다양했다. 물론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코로나 사연으로 꽉 차 터지기 일보직전처럼 느껴졌다.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먹거리들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러다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일단 당시에는 식료품점이 언제 다시 영업을 재개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먹거리들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생존의 문제가 너무 컸다. 24시간 통행금지 전날 큰 배낭을 짊어지고 마트까지 두 번 왕복하면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식품류를 사다 날라야 했다. 어깨가 너무 아펐고, 짐이 무거웠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뒤집어쓴 비옷의 모자가 계속 시야를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사업비를 아낀다고 차량 렌트를 하지 않고 버텼었는데, 다 소용없지 싶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먹을 것을 사다 나르려다가 죽을 판국이었다.
누군가가 내 집에 침입하지 않을까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다행히 안전한 지역에 속했다. 하지만 아파트 현관문의 잠금장치는 단 하나. 2015년 4월 부룬디에서 겪은 정치적 대혼란 속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누군가가 내 집에 침입하지 않을까, 하는…그래서 밤에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없었는데, 그때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도 현관문 잠금장치가 하나뿐이고, 신체가 유연하고 점프를 잘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내 발코니에 뛰어들 수 있다는 사실도 상당히 신경 쓰인다. 봉쇄 후 일주일 동안은 외국인으로서 나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컸다.
물을 아껴먹지 않아도 된다
통금이 부분 해제되었다. 도보로 슈퍼를 갈 수 있게 되면서, 물을 아껴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너무 행복했다. 그날, 생수를 차갑게 해서 예쁜 물병에 담아 하루 종일 시원하게 들이켰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죄책감이 의식되지 않는 되는 ‘남용’을 하는 느낌이었다.
비현실적으로 계속 시간이 흘렀다
비현실적으로 계속 시간이 흘렀다, 아니 흘렀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텅 빈 거리는 영화 ‘Bird Box’ 같았다. 그래도 인터넷이 끊겼던 사건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잘 지내온 것 같다. 다만,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추스리기 힘들었고 나의 멘탈은 그리 강하지 못했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자고,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많으니 이 기회를 유용하게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나를 몰아세우지 않기 위해 가장 신경 썼다.
뉴스를 지나치게 많이 보지 않도록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오는 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진심을 담아 평안을 바라는 인사들도 있지만, 형식적으로 안전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그간의 심정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황을 설명하면, 내 심정이 공감될까? 예를 들면 식료품점이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이제부터 나한테 있는 물 50리터로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니 아껴서 마셔야 했다는, 그 스트레스가 그들에게 전달이 될까, 궁금했다. 물이 떨어지는 게 제일 무서웠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도보 이용이 가능해지고 식료품점이 문을 열던 날, 얼마나 안도했는지, 어떻게 설명을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심정으로 다른 나라의 뉴스를 보고 있으면 너무 감정이입이 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뉴스를 지나치게 많이 보지 않도록 노력하는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요되었다.
어차피 떠날 수 없는 상황이 차라리 마음이 덜 복잡했다.
4월25일 즈음,신청자에 한해 외국인들이 원할 경우 본국 귀국을 지원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어차피 떠날 수 없는 상황이 차라리 마음이 덜 복잡했다. 선택이 주어지자, 너무 어려워졌다. 남아도 될까? 집안에 있으면 안전하긴 한데… 혹시라도 코로나 걸리면, 나의 조국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를 과연 이곳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엇, 나 지금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가?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면서?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코로나 걸려 죽게 되면 시신이 남에 의해서 발견이 될 텐데…. 내가 죽은 후 아파트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서 내 물건들을 수습해야 한다면, 괜찮은가 지금 이대로…? 밀린 빨래는 없나? 남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것들이 없는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죽은 이후에 남의 시선이 뭐가 중요하다고… 암튼 선택이 더 골치 아프다.
생존이 아닌 생활을 위한 물품을 하나 장만하게 된다
그리고 4월 28일, 나는 거의 두 어달 만에 처음으로 생존이 아닌 생활을 위한 물품을 하나 장만하게 된다. 색연필! 서서히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이 되어준 색연필. 문방구 영업 재개가 허락되었다.
당신의 지역에는 현재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4월 29일에는 우버 택시 서비스가 재개되었다. 그전까지는 ‘당신의 지역에는 현재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뜰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앱을 열어 그렇잖아도 공허한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는 시내까지 이동이 가능해졌다. 한달 반 만에 드디어 나도 외부 업무를 조심스레 재개했다. 사무실 가구 샘플을 보러 가구점에 다녀왔다.
일상은 이렇게 사소하게 구체적으로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겠지
4월 30일에는 세 달 만에 머리를 잘랐다. 보통 때라면 낯선 나라에서 처음 가보는 미용실이라는 설렘이 컸을 텐데, 이날은 봉쇄 이후 3개월 만에 머리를 자른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일상은 이렇게 사소하게 구체적으로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겠지. 모든게 예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인간이 또 얼마나 쉽게 무디어질 수 있는지, 한 두 해 겪은 일이 아니니…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생존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다.
교통사고로 차가 전복되는 순간을 겪은 이후, 내일 언제 어디서 교통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오늘 하루, 내일 죽어도 후회 없이 충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는데, 이제 교통사고에 하나 더, 바이러스가 추가되었다.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내일 일을 걱정 말고, 오늘을 후회 없이 잘 살아내자. 아등바등 할 것 아무것도 없다. 생존 자체로도 이미 훌륭하다. 생존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다. 이렇게 위로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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