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12] 만료된 비자 갱신하면서...

2020. 5. 13. 06:33별 일 없이 산다

이미 만료된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서 이민국에 다녀와야 했다.

통행금지로 인해 부득이하게 비자를 갱신하지 못한 외국인에 한해서는

벌금이 면제가 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지만,

부득이하게 갱신하지 못한기준에 대해서는

정부와 외국인 당사자간의 해석의 차이가 있는 경우도 제법 있어 보였다.

나는 2주 후에 다시 오라는 안내를 받았고,

무언가가 수기로 적힌 A4 1/6 크기의 작은 종이 조각을 받았다.

내 서류가 접수되었다는 확인증이라고 하는데,

가끔 이 나라 수도의 겉모습에 현혹이 되어 기대치가 많이 높아질 때가 있다.

2014년도 부줌부라 사무실 근처 키오스크에서 음료수를 살 때 받았던 영수증이 떠올랐다.

불어로 뭔가가 잔뜩 적힌 이면지에 날짜와 금액을 손으로 적어서 가게 도장을 찍어주던

키오크스 주인아주머니도 떠올랐다.

앞니가 흔들린다시며, 나를 볼 때마다 빼버리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시던 분이셨다.

 

 

 

이민국에는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이 금지되고,

가까이 서서 인사를 나눠도 경찰이 와서 제지하며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떨어뜨려 놓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맘에 든다.

의자에도 나란히 앉으면 안 되고 한 사람씩 띄어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마스크는 썼고, 서로 떨어져서 앉아 있지만

귀는 열려 있으니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다행히 이곳은 이민국이라 아랍어를 쓰는 사람보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한시간 정도 기다렸나.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잊히지 않는 천호진의 명대사

세상 불행은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힘들어하는 최민식에게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이 나라가 봉쇄된다는 소식에 휴가 중에 부랴부랴 복귀한 어느 NGO의 대표는

governorate 간의 이동이 금지되어

아직도 다른 지역 사업장에서 수도에 있는 본부로 돌아오고 있지 못하는

단체 자원봉사자에 대한 걱정을 한참 동안이나 담당 직원에게 설명하며

그의 비자를 대신 갱신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있었고,

 

어느 말레이시아인은 본인이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여러 차례 밝힘-

말레이시아에 돌아가기 위해서 온라인 신청을 접수했는데

왜 아무런 연락이 없냐,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데 왜 안되느냐며,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채로 다소 언성을 높였는데

창구의 담당 직원이 손을 들어 뭔가 신호를 하자,

경찰 두 명이 순식간에 나타나서 마스크를 제대로 쓰라, 소리를 낮추고, 직원과 거리를 두라며,

여기 업무가 아니라고 다른 곳으로 가라, 강하게 상황을 제압했다.

그 분은 어디론가 가셨다가 다시 오셨는데,

어째거나 비자를 연장 신청 하긴 해야 한다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온 젊은이는 같은 NGO에서 일하는 직원들 여권을 손에 한 가득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에 왔고, 연장해서 3월 초가 만료였는데

그 이후 비자 갱신을 하지 못해서 하루에 약 3천 원꼴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한다.

320일부터 통금이었기 때문에 3월초에서 320일까지 계산을 하는지,

아니면 정부가 벌금 면제를 발표했던 날까지 하는지 계산하는 문제로 카운터에서 얘기가 길어지고 있었고,

 

내가 자리를 뜰 때 즈음에는 필리핀 분들이 필리핀 억양을 알아들어서 필리핀 사람들인 줄 알았다 -

우르르 들어오셨다.

저분들도 나처럼,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또 나름의 사연들로 이 곳을 찾아오셨겠지.

이 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몇 번 갈 일이 있었는데,

매번 갈때 마다 그곳에도 여기저기 들려오는 사연들에 귀를 기울이다가 마음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다.

 

 

 

취업 및 거주 허가와 관련된 법률적 기준,

고임금 외국인 노동자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거창한 학문적 담론, 이주노동자의 경제적 효과, 사회적 부담 등등

이주노동자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일상의 삶,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일 매일 겪어내는 일상의 삶에 좀 더 주목하고 싶어 진다.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곳에 일상을 심고 엮어내야 하는 삶은 쉽지 않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라는 기준으로 생활의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리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특히 갑자기 떠나야 할 경우, 무얼 가져가야 하고, 무얼 놓고 가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물론 그런 결정을 할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20155월 정치적 이유로 갑작스럽게 떠난 부룬디 집에 남겨둔 내 살림살이를

나중에 현지직원이 챙겨서 201512월 제3국에서 만나 받은 적이 있었다.

버리고 버려서 19킬로를 만들어왔다고 자랑하던 친구의 환한 미소와 함께 감사히 받은 짐을 열자마자

빨래건조대에 널어두고 그냥 떠났던 기억이 그제야 떠오른 내 속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친구 역시 성별이 다른 상사의 속옷을 건조대에서 걷어오면서,

이걸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겠지. 미안했다.

웬만한 것은 다 버리고 중요한 것만 수화물 무게에 맞춰 가져오라고 강조했는데,

가방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왔으니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고 넣은 걸까?

상상은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고,

창문을 열어 화끈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야 했던 201512월은,

경황이 없어 정신없이 짐을 싸야 했던 그해 5월만큼이나 심경이 복잡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이미 이주노동자의 삶에는

 비이주노동자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가 기저질환처럼 존재한다. 

코로나로 인해 얼마나 더 힘들어졌을지는, 나 역시 이주노동자이지만

감히 함부로 '이해한다' 말하지도 못하겠다. 

 

 

코로나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우리 사회의 민낯이 많다.

이렇게 들춰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좀 환한 곳에서 먼지를 털털 털어내고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혹시라도 코로나 스트레스에 익숙해져서 무디어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간신히 드러낸 치부를 다시 덮어버리고 말 것인지, 정말로 궁금하다.

인류는 코로나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이 많은 죽음들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해야 할 텐데…

매일매일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고 수면의 질도 점점 저하되고 있다. 

일상으로 복귀한다 해도 적응이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