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3. 06:36ㆍ별 일 없이 산다
모든 것이 중단된 채 갇혀 지내는 생활을 한지 한 달이 지났다. 통금 전에 겪은 인종차별과 신변의 위협 이후, 거의 2주간은 집에만 있었다. 처음 통금때는 한 2주 정도를 예상했었다. 물은 45리터 정도 있었고, 식량도 충분했지만, 괜히 아껴야 할 것 같아서 하루에 마시는 커피도 두 잔으로 줄이고, 식량도 조심조심 아껴 먹었다. 밖에 나갈 일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모바일 라인이 끊겼던 3월 말,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외출을 했었다. 처음엔 인터넷으로 크레딧 구입을 시도하기 위해, 같은 층에 살고 있는 다른 4가구의 초인종을 눌러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Hot spot을 열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그러나, 우리 층에는 그 어느 집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랍말 하는 나라에 와서 아랍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거지,이들이 영어를 쓰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은 전혀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평정심을 위한 깊은 호흡…. 호흡…
이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친분이 있는 관리인 모하마드 아저씨네 집 문을 두드렸다. 이 곳은 대부분의 건물 관리인이 가족과 함께 건물에서 살면서 경비, 청소, 간단한 개보수 등의 일을 하며 아파트 거주자로부터 월 30~50달러 정도 되는 돈을 받는다. 이 건물에는 모두 25개의 아파트가 있으므로 이 아저씨의 월수입은 적어도 750달러 이상은 되시는 거다. 거기에 이것저것 심부름을 해주시면서 받는 팁을 생각하면, - 예를 들면 나는 물을 살 때마다 약 3-5 달러 정도 팁을 드리고 있다. 물값의 50%를 드리는 것이니 많이 주는 것 같긴 하지만,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드린다. 내가 택시를 타고 물을 사 왔어도 그 정도 돈은 든다. - 1,000 달러 이상은 고정 수입이 있으실 것 같다. 건물 관리인의 급여가 이 정도이고,출퇴근 가사도우미의 급여도 이 정도 되는데, 이 나라 최저 임금은 이의 1/3 정도 되니… 참 비현실적이다.
암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되돌아와서, 구글 번역기를 통해 모하마드 아저씨에게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선뜻 전화를 빌려주셨지만, 이 다급한 순간에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다시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어 혹시 이 빌딩에 영어를 하실 수 있는 분을 잠깐 만날 수 있을지 물었다. 모하마드 아저씨는 잠시 궁리를 하시더니, 에이미, 에이미 하시면서, 아파트 3호로 나를 데려갔다. 며칠째 이어진 통금으로 모두가 집에서 느슨한 상태로 있어서인지, 초인종을 누르고 나서 한참이 되어서야, 머리숱이 매우 많아 보이는데 한쪽 옆머리는 반대편에 비해 숨이 너무 죽어 비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 에이미라는 분이 문을 열어주셨고, 아시안인 나를 보자, 한 걸음 뒤로 물러서시면서 주머니를 뒤져 마스크를 찾아 착용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physical distance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며, 평소의 나라면 침이 튈 정도로 흥분하고 목소리도 높였겠지만,최대한 상냥하게, 미소를 활짝 지으며, 그러면서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다급한 기색은 감추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 설명을 했다. 8시간 미접속 금단현상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이성적인 대응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흥분했다고 침이 튀면 절대 안 된다.
그녀는 내게 너는 왜 이 나라에 혼자 와있니?라고 먼저 물었다. 역시 평소의 나라면, 그건 네가 알바가 아니지 않을까, 했겠지만, 이러저러해서 지금 이런저런 일을 앞으로 할 예정이다,라고 설명을 해주니, ‘좋은 일 하는구나’ 하며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좋은 일? 좋은 일 맞나?
‘아니. 지금같은 상황에는 여기서 얘기하는 게 좋겠어. 나중에 우리 집으로 초대할게. 나는 25호에 살아’,
‘그렇지? 그럼 잠깐 네 전화기를 보여줄래?’ 에이미는 어느새 일회용 장갑을 찾아 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네트워크의 앱을 열고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모하마드에게 한참 아랍어로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아랍어는…’아’를 발음할 때 굉장히 격하게 내는 발음이 있다. 약간 가래나 올 것 같은 깊은 목 떨림이 있는 소리다. 나는 이 소리가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못알아듣는 언어를 그냥 듣고만 있는 일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인데, 이 ‘아’ 발음때문에 나는 아랍어와 친해지는데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잠시 의식이 다른 곳에 가있다 돌아와 보니, 모하마드 아저씨는 자신감에 차서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며, 같이 어딘가를 가자고 했다. 에이미는 나에게 모하마드만 따라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거의 2주 만에 처음 바깥 외출을 하게 된 날. 인터넷 금단 현상으로 나의 멘털은 바짝 말린 우거지 이파리 마냥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을 경험했다. 누가 또 나를 코로나라고 부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모하마드 아저씨 뒤를 따라가다 보니 왠지 안전한 느낌이 들었고, 매일 한 평도 안 되는 4층 발코니에 서서 즐겼던 햇볕과는 차원이 다른, 넓은 대지의 숨결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웠고 당황스러웠다.
통금 이전에는 별 감흥 없이 걷던 골목길이었었는데,
지금은 이 압둘무탈렙 작은 동네의 바깥공기가
빅토리아 폭포였고 그랜드 캐년이었고, 세렝게티였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터 라인을 되살리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입이 바짝 마르던 금단현상이 무색할 만큼,세상은 그대로였다.여전히 코로나로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확진자 수는 늘어나고 남의 다리 긁는 소리만 하는 이메일이 인박스를 채우고 있었고 메신저에는 늘 안부를 물어주는 지인들의 생존 확인 인사 메세지만 와 있었다.
그래도 뭔가 좀 색다른 뉴스가 있었을 거야,하는 바람으로 뉴스 사이트를 둘러봐도 가장 큰 별 일은 여전히 코로나였고, 또 코로나였다. 인터넷 세상은 그대로였고,나만 빅토리아 폭포와 그랜드 캐년과 세렝게티를 하루 만에 다녀온 듯 매우 피곤했으며, 게다가 마음속으로 아저씨라고 불렀던 모하마드 아저씨는 아저씨가 아니라 내 동생과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무척이나 반겨주는 그 집 둘째 아들은 내 첫째 조카와 동갑이었다. 통금 때 비상식량으로 사두었던 아끼고 아끼던 초콜릿 쿠기를 가지고 모하마드네 집에 다시 내려갔다. 고마워, 모하마드. 늘 아저씨라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는데, 오늘부터는 그냥 동생 모하마드. 이제 웬만하면 다 동생이다. 받아들여야겠지.
물이 떨어졌었어도, 오늘처럼 당황스러웠을까. 유난히 대답이 늦어서였는지, 친구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 드디어 누가 물어와 주는구나. 다녀온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그 광활한 자연의 웅장함이 압축된 우리 동네 골목골목 좁은 길을, 바람은 차가운데 햇볕은 뜨거워서 입고 있던 두꺼운 스웨터 때문에 등에 땀이 맺히는데 콧잔등은 시렸던 그 짧은 20분을, 인터넷 금단 8시간 동안 상상했던 바깥세상을… 나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짧게 적어 보냈다.
인터넷이 끊겼었어 ㅋㅋ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 혼자 호들갑을 떨었던 그 날 저녁에도 하늘은 아름다운 석양을 자랑했고, 이제 내게 이 석양은 답답한 4층 발코니의 석양이 아니라, 빅토리아 호수이고 그랜드 캐년이고 세렝게티인 하늘이 되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오늘 하루가 잊히지 않았음 좋겠다.
'별 일 없이 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4.22] 버려진 장갑 (0) | 2020.04.22 |
---|---|
[2020.4.19] 코로나 시대에도 친구는 생긴다. (0) | 2020.04.20 |
[2020.4.5] 코로나와 발코니 (0) | 2020.04.09 |
[2020.2.23] 길들이고 길들여지기... (0) | 2020.02.23 |
[2020.2.8] 너를 포기해야 할까...? (0) | 2020.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