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2] 3일 연속 완전 통행금지 속 잡다한 생각의 흐름...

2020. 5. 22. 20:56별 일 없이 산다

라마단이 끝나고 Eid 연휴가 시작되면서 3일 연속으로 완전 통행금지가 내려졌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갇혀있어야 한다는 느낌에는 영 익숙하거나 편안해지지가 않는다. 그렇지만 3월 중순처럼 식량이 충분할지를 염려하며 기약을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지 않는다. 

 

3일 연속 통행금지 기간 동안, 밀린 일을 바짝 해두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사무실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서서히 코로나 19 시대에 맞는 업무 환경으로 upgrade를 해야 하기 때문에 행정체계 시스템도 온라인으로 바꾸는 등 할 일이 많다. 할 일들을 쭈욱 적어보았다. 중요한 일, 급한 일,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데 하고 싶은 일.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데 무기력해져서 자꾸 반복하게 되는 일. 이런 종류의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종류의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따위는 아무짝에 소용없다. 그저 좀 더 중요하거나 급한 일들의 목록을 늘리고 여기저기 자꾸 떠올릴 수 있게 붙여놓거나 되뇌는 것이다. 

 

그렇게 요즘 한 며칠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3일 연속 통행금지가 되니, 또 무기력감에 빠진다. 그 어떤 자기 계발의 테크닉이나 나이 먹어 쌓인 경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 코로나가 적나라하게 나와 마주하게 해 준, 나의 자기 통제능력 - 나 하나도 제대로 수습을 못하면서 내 주제에 누구를 가르치며 일을 시킨다 말인지...


동네가 조용하다. 부엌과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두니 덥지만 그래도 반가운 맞바람이 들어온다. 4월 초까지도 실내에서 난방기를 켜고 살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한 낮 온도가 38도까지 올라간다. 다른 지역에는 낮 최고 기온이 45도를 찍었다고 한다. 습도가 낮아서 불쾌지수가 한국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처럼 높지는 않지만, 밖에 나가면 아찔해진다. 캄보디아에서 이미 겪은 일이긴 하지만, 수도관과 물탱크가 뜨거운 햇볕에 달궈져 하루 종일 뜨거운 물을 써야 하고, 감히 태양을 절대 마주하지도 않고 등지고 뒤돌아 서있는데도 눈이 부셔서 뜰 수 없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내장기관이 한 번씩 스팀 되는 느낌. 그 느낌이 이번 주 내내 있었다. 차가운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만들어서 발코니 창문 펄럭이는 커튼 가까이 서있어 본다. 살랑살랑 피부에 와 감기는 커튼...... 느낌이 좋긴 한데, 한 번 빨긴 해야겠다. 이전 세입자는 이 커튼을 마지막으로 언제 빨았을까? 갇혀있는 시간이 너무 답답하고 당황스러워서 큰 맘먹고 청소한 가스레인지 환풍기를 보면 한 3년은 안 빨았다 해도 믿을 것 같은데. 가스레인지 환풍기의 기름때를 닦아내는데 거의 3일은 걸렸던 것 같다. 락스를 물과 50대 50으로 섞어서 담가 두었는데도 잘 벗겨지지 않던... 독한 놈들.

 

암튼 바람이 정말 시원하고 좋다. 이런저런 옛날 생각들이 떠오른다. 지난 3년 탄자니아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요즘 특히 그렇다. 뭐, 특별한 기억들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순간들...

 

매번 우리 팀을 기다리게 했던 지역 정부 청사의 식당. 10시에 약속을 했지만, 빨리 만나면 11시가 되어야 만날 수 있던 사람들. 도착했음을 알리고는 근처 식당으로 가서 밀크티를 한 잔 주문하고 기다리곤 했다. 팔팔 끓이긴 했지만, 늘 어디서 가져온 물일까 궁금해하면서도 배탈이 쉽게 나지 않는 튼튼한 내장기관에 감사하며 즐겨마셨다. 참 맛있었지.

 

태양은 오전 10시부터 한낮 2시와 다름없이 짱짱한 위용을 과시하며 식당의 양철지붕을 달구고, 철조망으로 대신 한 창문가에 놓인 탁자 위에까지 과감히 쳐들어 온다. 최대한 햇볕을 피해 구석에 자리잡지만, 거칠게 마감한 탁자와 의자 모서리에 입고 간 얇은 옷은 한 두 올 정도 내주기를 각오해야 한다. 탁자의 나무색이 노란 고양이 같아서 괜히 쓰다듬어 보던 그 시간들...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또 다른 장면, 동네에서 찾은 실 가게. 옷감뿐만 아니라 지퍼에 단추까지 동대문 원단시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반가웠던 그곳. 이 곳을 찾고 얼마나 좋았던지. 

 

지금 지퍼가 없어서 마무리 짓지 못하는 파우치가 3개나 있다. 이 나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 중순, 지퍼와 이런 부속재료들을 파는 곳을 파악하기도 전에 코로나로 봉쇄된 이후, 이 곳이 더욱 그리웠고 생각났다.  이 가게 바로 앞에는 상하수도 대신 만들어 둔 도로 양 옆 수로에서부터 썩은 내가 올라왔다. 하지만 어떤 악취와 불편도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차 타고 가면 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 곳을 떠나오면서도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 기약 없는 곳이 되었다. 괜히 더 울컥해진다.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어둘걸. 떠나오기 전에 작별인사를 좀 더 잘하고 올걸... 후회가 깊다.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날이면, 사무실 근처 길거리 상점에서 한 두 개씩 사 오곤 했던 바나나와 아보카도들... 이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언젠가 썼었는데 어느 블로그 사이트에 저장을 해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정리가 필요하다.

 

암튼 이 할아버지는 늘 아침 일찍 아래 사진처럼 큰 시장에 가서 과일들을 조금씩 이것저것 사서 자전거로 가져오시는데, 어느 날, 길에서 사고가 나시는 순간을 목겼했었다. 

큰 사고는 아니셨지만, 얼기설기 얽힌 자루에 담긴 잘 익은 토마토와 아보카도가 다 쏟아지고 지나가던 차들에 으깨지고... 그 장면들이 떠오른다.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수습하실 때까지 우리 차량으로 길을 막아드렸는데, 몇 번이고 고맙다고는 하셨지만, 오늘 할아버지 하루 장사 망치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었다. 저 할아버지는 이제 내일 과일을 무슨 돈으로 사시나.... 돈을 빌리실 곳이 있을까? 그러다가 동료들과 당시 우리가 진행하던 VSLA (Village Small Loan Association)를 가지고 한 참 동안 굉장히 실제적인 대화를 나눴더랬다. 탄자니아의 코로나 업데이트가 벌써 몇 주째 멈춰있는데,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모두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이런 기억들에 이끌려 컴퓨터 사진 폴더를 연다. 정말 좋은 시절을 보냈구나. 아주 후회스럽지만은 않구나. 그리운 사람도 많고, 그리운 곳도 많고... 다시 가볼 수 없어서 더 안타까워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동안 살아내온 시간들이 단조롭지만은 않아 추억할 것이 많이 있네. 

 

언젠가 지금 이렇게 코로나에 들볶이는 시간을 되돌아보게 될 때,  나는 어떤 기억들이 제일 먼저 떠오를까. 어떠한 아주 사소한 일상의 순간이, 또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있을 나의 마음을,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처럼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있을까. 그리운 게 너무 많은 것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3일 연속 통행금지의 첫날 오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