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3] 제주 올레 7길 - 돔베낭골에서 강정천까지 걷기

2021. 5. 16. 21:41한 걸음 한 걸음

일찍 눈이 떠져서 8시 반부터 걷기 시작했다. 올레 7길은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외돌개 전망대까지 4월에 걸었었기 때문에 이번엔 돔베낭골에서부터 시작한다. 17.6km로 내게는 긴 거리라 아무리 전에 미리 조금 걸어놨다 하더라도 남은 길을 완주하겠다, 다짐하고 길을 나설 수는 없었다.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는 걸어보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요즘엔 1시간 이상 걷고 나면 발바닥은 둘째 치고, 허리에 부담이 와서 오래 못 걷는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올레길을 걷는다 하니, 주변에서 이렇게 묻곤 한다, 어디가 제일 좋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처하다. 매일매일 오늘이 최고일 것 같은데 어제와는 다르게, 새롭게 갱신되는 제주의 아름다움에 내일이 더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레 7길을 걷고 나니, 손가락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을 꼽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여기 저기 찔끔찔끔 15개의 올레길을 걸었는데 현재로서는 올레 7길이다. 법환포구 쪽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외돌개의 비장함은 말할 것도 없고, 강정이 던지는 여러 질문들이 올레 7길 걷기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게다가 5월 13일은 날씨까지 한없이 너그러웠다. 이 날 올레 7길을 걷는 순간은 그야말로 온 우주가 도와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정신없이 늘어선 전깃줄 사이로 한라산이 보였다.
저 정도로 한라산 정상이 드러난 순간을 보기 쉽지 않다.

돔베낭골에서부터 서귀포 여고까지 도심을 조금 걸어야 한다.
그리고 서서히 속골이 가까워질 무렵에 이런 바다가 나타난다.

속골의 깊은 골짜기는 수량도 매우 풍부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물이 흐른다.


속골의 물이 바다로 떨어지는 곳

올레 화살표 방향을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올레지기 '김수봉'님이 일구어낸 길이라 '수봉로'라고 불린다는 설명이 안내판에 써있다.

속골에서부터 법환포구에 이르는 길은 조금 울퉁불퉁하다.
올레 리본이 보이지 않아서 살짜기 불안한 구역도 있는데,
길이 그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질문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냥 쭈욱 걷기만 하면 된다.

이 카페 전망도 참 좋다.
요즘처럼 비 와서 걷지 못하는 날에는 이런 카페에 가면 좋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마음이 개운치 않아서 자제하면서 주의하고 있는 중이다.

공물은 법환동 556번지 일대에서 솟아나는 물인데, 평소에는 솟지 않다가도
천둥과 벼락이 치면 비로소 솟아나는 물이라 하늘에 의해 좌우된다 하여 '공물'이라 불린단다.

날씨가 너그럽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반짝이며 일렁이는 파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망다리는 법환동 301번지 지역이란다.
법환포구 동편 법환동 남쪽 마지막 해안가에 있는 언덕으로
이 동산에서 달을 바라보는 정취가 일품이라 해서 '망달'이라 불린다고 한다.


빛이 난다, 바다가.

이 부분에서 조심해야 한다. 사진으로는 잡히지 않았지만 법환포구를 지나는 큰길이 있는데,
정신 놓고 걸었다가는 계속 직진하게 된다.
성게국수, 회국수 판다는 저 간판 덕분에 올레 화살표가 잘 눈에 띄지는 않는데
암튼 큰길에서 벗어나 좌측으로 걸어야 한다.

하루 두 번 썰물이 되면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는 섬이 저기 보이는 섬이다.

구름도 오늘은 참 자유롭고 가벼웠다.

은어 서식지로 유명한 강정천
내려가서 손을 담가보았다. 내 손으로 물을 더럽히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맑다.


강정천이 바다에 닿는지, 하늘에 닿는지 끝없어 보이는 이 풍경도 좋다.
올레 7길 위에는 다시 와봐야지, 하는 절경이 곳곳에 있다.

남은 길을 다 걷지 못하고 강정천 버스정류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정류장에는 강정천을 보존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 여럿이 길게 걸려있다.

코로나로 호되게 앓은 지난 2년은 어쩜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간은 조심히 조심히 숨만 쉬고 살아도
지구에 용서받지 못할 몹쓸 짓을 해왔으니
올레길 위의 감동을 허락해 준 자연 앞에 겸손하고 숙연하게,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연에 거슬리지 않게 조심히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