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6. 12:10ㆍ한 걸음 한 걸음
제주 올레 8코스와 여미지 식물원 가까이 있는 숙소에서 지금은 지내고 있다. 베란다 커튼 걷어 해가 가득 들어온다. 커피는 이른 아침에 이미 한 잔 마셨으니, 이번엔 둥굴레차를 끓였다. 일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이 제법 마음에 드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했다. 광고도 없어서 매우 마음에 든다. 집중해야 하는데 또 옛날 사진으로 빠진다. 어제는 2002년 영국 남부를 여행하던 사진에 푹 빠져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나저나 1년 살 곳을 정해야 했었는데 어느새 5월이 되어 이제는 6개월 숙소를 구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찌될지 모르겠어서 두세 달 단기 임대를 구하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다. 6월 중순까지는 좀 더 알아보기로 했는데, 통영은 우선순위에서 매우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보다는 부모님 댁 다니기가 용이하고, 바다도 있고 오르기 어렵지 않은 언덕과 북포루가 있고, 남망산 하드코어 계단 오르기 같은 (내게는) 극한 코스도 있고, 소풍 가기 좋은 이순신 장군 공원도 있고. 물론 매우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키며 혼자 다니고 있다.
암튼 통영이 계속 마음에 있어서 그런가, 통영사진 폴더도 제법 자주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안 올린 사진이 있었네. 이 곳에 정리를 해놔야 어디에서든 쉽게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좋은데 말이지. 서피랑, 미륵산, 남망산, 통영 시내, 이순신 장군 유적지 등등...
그중 이번은 서피랑.
동피랑처럼 오를 수 있는 입구가 시내에 몇몇 곳 열려 있다.
통영 어디에 묵어도 중앙시장 근처에만 오면 서피랑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나는 여기 아래 입구에서부터 올랐다.
골목이 좁고 가파르기 때문에 힘들 수 있지만, 해리포터 마법의 동네에 들어서는 것처럼 신비로운 구석도 있다.
이런 길을 쭈욱 따라 오르고 나면, 설명이 더 필요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일기장을 보니 3월 16일은 그다지 날이 춥지도 않았다.
덕분에 여유롭게 천천히 천천히...좋은 시간을 보냈다.
유명한 서피랑 99계단 내려가는 길
이 곳에는 사슴 두 마리를 키우는 마을 농장이 있다.
서피랑 한켠 가파른 언덕에 외부인 출입을 막고 조성된 농장에서 살고 있다.
선창길 쪽으로 내려가면 폐가도 눈에 제법 띈다.
한때는 누군가의 소중한 살림살이였을 텐데, 이제는 그저 그 사연을 헤아려 보는 사람도 없이 버려져 있다.
옹벽이라고 해야하나, 가파른 계단에 길을 내고
아슬아슬하게 문을 내어 달은 집도 있다.
어디에든 몸을 내려놓고 살아야 했기에
어려운 시절을 거쳐온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힘들게나마 마음의 문을 내고 살아내야 했던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자리를 잡고 산 흔적이
이곳에는 가득하다.
서피랑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많은 지붕 밑 사연도 궁금하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집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괜히 대견하고 감사하다.
그 발걸음을 든든히 지켜주는 이 언덕도 대견하다.
그러니, 서피랑을 오르기 전에 마음을 단디 먹어야 한다.
한 번 오르면 쉽게 내려올 수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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