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7] 제주 올레 8길 절반 - 중문관광단지에서 대평포구까지

2021. 5. 8. 21:19한 걸음 한 걸음

올레 8길은 중문 관광단지 안내소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평포구까지만 먼저 걷기로 했다. 사실은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공부하기 전에 방청소에 책상 정리, 책꽂이 정리, 그리고 잉여질을 좀 해야 긴장감이 생긴다. 미리미리 일을 해두는 편이었는데, 사람이 변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기 때문에 오전만 딴 짓을 하기로 하고 숙소 근처 중문 관광단지에서부터 대평포구 방향으로 올레 8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문 관광단지 근처에서부터 걷기 시작하면 올레 8길은 사람을 좀 당황시킨다. 

이 아름다운 제주에, 왜 아스팔트 깔린 대로변에 올레길을 냈을까? 

 롯데 호텔, 신라 호텔 바닷가쪽에 길을 내기 어려웠나..

올레 6길 걸을때 보니 서귀포 칼 호텔은 올레길 걷는 사람에게 호텔 정원을 통과하게 해 주던데...

 

암튼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래 사진처럼 나무가 근사하게 지붕이 된 지역을 통과하기도 한다.

 

 

도심을 걷다가 이런 곳을 만나면 왼쪽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정신 놓고 걷다가 또 놓칠 뻔했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파란색에 중독이 된다.

무의식적으로 파란색을 찾게 되고, 파란색이 있으면 가보게 된다. 

올레 리본 때문에 뭔가 바람에 휘날리는 게 있으면 또 집중하게 된다. 

동체시력이 발달되는 효과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ㅋ

 

 

대왕수천 저수지를 덮은 옥잠화... 일까? 옥잠화가 맞나? 

 

암튼 생태공원이 걷기 좋게 조성되어 있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큰 선물일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리본 

 

 

졸졸졸 물소리를 즐기며 걷다 보니 드디어 멀리 바다가 보인다. 

제주에 다시 온 지 4일 만에 바닷가를 제대로 구경한다. 

 

논짓물은 바다 가까이에 있는 논에서 나는 물로 버리는 물이라는 뜻이란다.

그 논짓물로 아이들이 놀기 좋을 것 같은 안전한 수영장 같은 해수욕장을 만들었다.

 

 

예래, 이름이 이렇게 여리여리 예쁜데 사자가 오는 마을이라니, 멋지다.

 

 

이 카페도 삼양해변 에오마르처럼 전망이 좋다. 

 

 

그렇게 조금 가다 보면, 나같이 산만한 사람은 집중해야 표지판을 찾을 수 있는 구역이 나온다. 

올레길에서 길을 헤매는 나 같은 사람도 있긴 있겠지.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하고 스스로 격려를 해주지만, 

살짝 집중을 해야 한다. 넋 놓고 걸었다간 또 엄한 길로 빠진다. 

 

 

화살표 잘 따라가야 한다. 여기서는 정말 직진할 뻔했는데, 우회전을 해야 한다.

 

 

드디어 대평포구 도착!!

 

 

저기 보이는 곳은 피자집인데, 나는 이 건축물이 좀 생뚱맞게 느껴졌다. 

좀 눈이 시린 하얀 건물이다.

 

은은한 불빛 아래서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싶은데 

새하얀 백열등을 눈 아프게 켜 놓은 느낌이랄까. 

사진으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긴 한데, 

처음 시선이 닿은 순간에는 아이쿠, 했다. 

 

 

도장, 도장!! 야무지게 또 찍어보는 올레길 도장! 

 

도장을 찍고 나서 이제는 돌아가야 하니 지도 앱을 연다.

대평리 정류장까지 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하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을 잡아본다. 

 

버스 타러 가는 길, 담벼락이 예쁘다. 

 

드디어 대평리 버스정류장 도착.

다음 버스 알림을 확인해보지만, 정보가 없다 한다.

마냥 기다리는 버스는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상관없다.

 

버스 정류장 주변을 어슬렁 걷는다. 

지난 4월 2일 오후 5시경 삼매봉 입구에서 눈 앞의 버스를 놓친 경험 때문에 

버스가 오는 방향에서 시선을 돌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정류장은 그냥 표지판을 세워둔 것뿐이고

버스는 실제로 그 건너편 버스가 회차하는 곳에서 타야 한단다.

 

바로 길 건너 아래 사진 정류장에서 기다려도 된다.

 

이번에는 매우 매우 친절한 531번 기사님을 만났다.

위 사진의 정류장 의자에서 앉아 있는 나를 부르신다.

 

'아가씨, 거기에는 버스 안서요. 지금 이거 타요. 7-8분 있다 여기서 바로 출발해요.'

 

 

응? '아가씨' 라니!

근데 나 이런 호칭에 그냥 주변이 환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아줌마, 아주머니, 이모님, 고모님, 어머님, 그리고 또 어머님.

중년의 여성을 지칭하는 이름들은, 할머니 빼고 죄다 들은 것 같다.

지난 1월 귀국 이후 나를 부르던 목소리들 - 이런 호칭이 너무 낯설었는데 

그나마 '아가씨'가 나은 걸까?

 

중문 관광단지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불리는 게 좋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기요' 말고, 뭐가 있을까, 계속 찾아본다. 

아가씨라는 호칭도 맘에 안 드나 보다. 

그치, 양심은 있는게지. 

 

삼천포로 빠졌지만, 그래도 다시 제주 올레 8길로 되돌아와서 

절반만 걸은 올레 8길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은

전망이 좋아서 카페가 들어선 것 같은 <마녀의 언덕>,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면 나오는 <카페 팔길>

이 구역에 바다를 마주하고 앉게 한 의자가 몇 군데 있다.

거기서 한 숨 돌리며, 잠시 쉬어가던 길이 좋았다.

 

근데, 사실 쉬어가야 할 만큼 힘든 코스는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없이 걷기 좋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