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는 이르마 스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올레 음바티엔은 (물론 허구이지만) 자신이 이르마 스턴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지도 전혀 몰랐고,
하늘이 내린 아들 케빈이 마사이 전사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인 할례를 피해 도망가는 와중에
훔쳐간 것이 이르마 스턴의 작품이었다.
요나스 요나손은 소설을 통해 남아프리카의 화가 이르마 스턴을 다시 환기시킨다.
그녀가 아프리카를 여행 하던 중 병에 걸렸을 때,
우연히 치유사인 올레 음바티엔을 만나 생명을 건지게 되거든.
감사의 표시로 그려준 그림 두 점은
훗날 염소 성애자 빅토르, 광고맨 후고 등 주인공들에게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을 통쾌하게 선물한다.
(자세한 내용은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소설 참고)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이르마 스턴은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서 함 찾아봄.




이 작품은 매우 흥미롭다.
가디언지에 소개가 되었는데, 2015년 한 미술 전문가가 이르마 스턴의 1939년 작품 Arab in Black을
런던의 한 아파트 주방 벽에서 메모게시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단다.
최대 100만 파운드 (약 수입억 원대)로 평가되는 그림이
어느 가정집 부턱에 편지, 우편물, 안내장 등으로 가려진 채 걸려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원래 1950년대 당시 넬슨 만델라의 변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 경매에 출품된 작품이었다고 한다.
South African painting discovered in use as a kitchen noticeboard valued at £1m
Arab in Black by Irma Stern, which was donated to fund Nelson Mandela’s legal defence in the 1950s, found covered in bills and letters in a London flat
www.theguardian.com
요나손이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쓴 계기가 되어줄 법했을 매우 흥미로운, 이미 영화 같은 사건이다.
<이르마 스턴의 생애>
* 인터넷 기사, 유투브 등 참고하여 편집
- 이르마 스턴은 1894년, 당시 트란스발 공화국(현재 남아공 가우텡 지역)의 슈바르체라이엔카(Schwarze Reienka)에서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삶은 태생부터 이미 “경계인(outsider)”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앵글로–보어 전쟁이 발발했고, 아버지는 보어인 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영국군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의 환경은 비위생적이고 비인도적이었으며, 가족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했다.
-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케이프타운으로 피신했고, 다행히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석방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은 남아프리카를 떠나 유럽,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 이후 전쟁 전까지 비교적 평온한 시기 동안, 스턴 가족은 유럽 전역을 여행했고, 이 경험은 이르마에게 폭넓은 문화적 감각과 시각적 기억을 남겼다.
- 학업을 마친 뒤, 이르마는 독일의 명문 미술학교인 바이마르 아카데미(Weimar Academy)에서 미술을 공부한다. 이는 당시 남아공 여성 예술가로서는 매우 드문 국제적 미술 교육이었다.
- 1917년, 그녀는 독일 표현주의 그룹 디 브뤼케(Die Brücke)의 핵심 인물이자 지도자였던 막스 페히슈타인(Max Pechstein)을 만나며 예술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이 만남을 통해 그녀의 화풍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질, 감정 중심의 표현주의로 확고해진다.
- 1919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유럽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20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가족과 함께 케이프타운으로 귀환한다. 이후 케이프타운은 그녀의 평생 ‘기지(home base)’가 된다.
- 당시 사회는 여성이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르마는 결혼이나 가정에 자신을 한정하지 않고 예술과 여행에 삶을 바치기로 선택했다. 유대인이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그녀를 더욱 강한 독립적 인물로 만들었다.
- 1926년 독일인 교수와 결혼했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1934년 이혼했고,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우울과 내적 긴장이 짙게 드러난다.
- 독일 표현주의를 남아공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그녀의 작품은 보수적인 백인 사회와 정부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고, 신문에서는 “추하고 혐오스럽다”는 혹평이 이어졌다. 일부 전시에서는 경찰이 ‘외설성’을 조사하기도 했다.
- 그러나 이르마는 비판에 굴하지 않았고, 자신의 화풍을 바꾸지 않았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도자 작업도 병행하며 창작을 지속했다.
-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의 반유대주의가 심화되자, 독일 전시 요청을 의도적으로 거부했고, 대신 유럽 대신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 무대로 삼는다.
- 그녀는 콩고, 잔지바르, 남아프리카 내륙, 스와질란드, 나마콸란드 등을 여행하며 아프리카 인물과 풍경을 그렸고, 여행 중 가면·조각·공예품을 수집했다. 이는 마티스와 피카소의 수집과도 비교된다.
- 여행의 기록은 단순한 회화에 그치지 않고, 콩고와 잔지바르를 다룬 삽화 일기(illustrated journals)로 출판되었다.
- 1940년대에 들어서며 그녀는 남아공의 국민적 예술가로 자리 잡았고, 이국적 색채의 회화는 중산층 가정의 상징적 소장품이 되었다.
- 작업 방식은 매우 집요했다. 한 번에 완성하는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을 고수했고, 작업 중에는 출입 금지 팻말, 연속 흡연, 진한 블랙커피가 늘 함께했다.
- 생애 동안 100회 이상의 전시를 열었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국제 전시에 참여했다. 1966년, 전시 설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 사후 그녀의 집은 이르마 스턴 뮤지엄으로 보존되었고, 작품 가격은 계속 상승하여 남아공 미술 경매 최고가 기록을 반복적으로 경신했다.
- 그녀의 작품은 오늘날 문화적 전유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리와 차별의 시대에 다양성과 인간성을 그린 예술로 재평가되고 있다.
그녀의 생애를 알고 나니
지난 10여년 간 나의 일터이기도 했던 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이 떠오르면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Irma Stern Museum이 케이프타운에 있다고 한다.
https://irmasternmuseum.co.za/
테이블 마운틴 뒷 편에 있구나.
언젠가 케이프 타운에 다시 가볼 수 있다면, 이르마 스턴 박물관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과연 그 언제가 언제가 될까...
괜히 그립고 아련한 마음에 구글 지도를 찾아본다.
구글 Earth까지 열어볼 판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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