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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읽고 듣다가...

모스크바의 신사 (Amor Towles, 2016)

by Matika 2026. 1. 21.

 

 

 

오바마 대통령이 추천했다 했을때도 뭐 그냥 그랬는데,

친구의 설득력있는 추천으로 작년에 집근처 도서관에 도서 예약해서 올해 2026년 1월 13일부터 읽기 시작.

유명인의 추천보다 요즘은 주변 지인들의 추천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요즘처럼, 직장처럼 어딘가에  몸과 정신이 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때 읽기 좋은 책

- 한 구절 한 구절이 머릿 속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보통 때 같으면 게을러서, 혼자 먹는 밥상, 누가 보냐, 싶어

큰 반찬통의 반찬을 굳이 작은 그릇에 덜어 먹는 수고를 하지 않고 

큰 반찬통 그대로 식탁에 그냥 올렸을 게으른 순간에 

로스토프 백작이 떠올라 반찬을 작은 접시에 제대로 옮겨 담아 상을 차렸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는 아마도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

일 것이다. 

 

이 말은 

"명심하시오, 백작. 만약에 한 걸음이라도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라는 협박을 듣고 나서였다. 

호화로운 스위트룸에서 호텔 꼭대기 낡고 좁은 방으로 쫒겨나 죽을 때까지 호텔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 

그렇치만 로스토프 백작은 그를 가둔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그가 살아온, 그를 지탱해준 삶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며 

우아하게 대항한다. 

 

감금 상태에서 만난 호텔에서의 인연들이 로스토프 백작 자신이 가진 인품과 개성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 

그림, 음악, 음식, 의상 등 다방면의 문화적 소양과 책,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 

인내심과 상대에 대한 배려, 우아함 등 

그야말로 책 제목처럼 '신사'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그가 그 신사로서의 삶을 영위해가는 것 자체가 

자신을 감금시킨 체제에 대한 로스토프 백작 자신만의 저항의 수단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장편 소설, 긴 호흡으로 읽었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16부작 정도 되는 드라마라 생각하면서 

내일, 로스토프 백작은 뭘 하며 감금 생활을 이겨낼까, 이 호기심으로 몇 날 며칠 쭈욱 이어나가면 된다. 

잔잔해보이지만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챕터가 바뀔 때마다 우리나라 드라마 마지막 장면처럼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긴장감을 준다.

 

 

내가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러시아에 무지하니 뭐라 할 말은 없으나 

차 한 잔을 마셔도, 점심 식사에 곁들일 와인을 한 잔 한다 해도, 어쩜 이리 섬세하게 묘사를 해놨는지...

작가의 고증이 철저하다는 평을 읽긴 읽었으나  

진짜 자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어서 머릿 속으로 어렵지 않게 그림이 그려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를 단속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 출근하거나 갈 곳이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보통의 나라면 그냥 잘 때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앉아 있었을텐데

 

왠지 자꾸 외출복으로 단정히 갈아입고 

그가 의자를 등으로 밀어 비스듬히 기울이고 책을 읽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은 느낌, 

물 한 잔을 마셔도 우아한 컵에 따라 마셔야 할 것같은 느낌, 

껍질을 벗긴 사과도 예쁘게 잘라서 포크로 정갈히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보통은 설겆이 귀찮아서...손으로....--;;) 

 

좀 전에도, 양손이 꽉차서 냉장고 과일 서랍을 발로 쓰윽 밀까 싶었으나....

서둘러 손을 비워 발 사용을 자제했다. 

 

당분간 로스토프 백작 효과가 상당할 것 같다.

물론, 나는 그의 문화적 소양도 없고 정신 훈련도 되어있지 않아서

이 효과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