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4] 삼천포로의 끝없는 여행 - 이미 다 연구가 되어 있는 것 같은 허무함에서 Biblioteca Vasconcelos, Mexico City 까지

2020. 5. 24. 18:53일하다가 드는 생각

[출처] https://www.cntraveler.com/galleries/2014-09-02/10-of-the-worlds-most-beautiful-libraries

 

경력을 되돌아본다. 이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왠지 내가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서. 

 

대학 졸업 후 처음 직장은 작지만 매우 실속 있는 무역회사였다. 졸업식날 합격 소식을 받고 무척 기뻤지만, 그곳에서는 1년 정도만 일을 했다. PC 통신으로 참 재미있게 살면서 일했다. 천리안과 채널아이에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썼었다. 사장님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지금 되돌아보면, 그게 사장님이었는지, 사장님이 매일매일 갈아입고 나타나시는 새로운 실크 와이셔츠였는지는 모르겠다), 상무님의 귀여움을 받았고 (받았다고 생각되고? 아니, 착각되고,정도?), 과장님을 통해 간이 쉴틈 없는 영업사원의 고충을 보았다. 동료들도 좋았고. 하지만, 일이 재미없었다. 실크 수입 관련 영어 번역을 하다가, 어느 날 중국산 아이스박스를 수입해야 해서 자료 조사를 하던 업무가 주어질 즈음에 관뒀다. 

 

회사를 그만두고, 노동자 재취업과정으로 한 4개월인가 웹을 공부하고 지금은 거대공룡과 합병이 된, 인터넷 포털 1세대 기업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확장해낸 사회적 가능성을 조금씩 체감하면서 Communications 석사 공부를 마쳤고, 

 

이후에는 정말 여러 군데서 communication과 관련된 업무를 하다가 2004년부터 공공분야에서 일을 하고 2007년부터 소위 개발 인권 평화 분야의 일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석사 International Peace Studies 도 중간에 했었고. 국제이해교육, 평화교육, 다양한 분야의 인권 교육, 인권에 기반한 개발 연구 등, 그러다가 또 소위 '개발 현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나와서 일을 한 것은 한 7년 정도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연구나 교육만 하다가 직접 현장에 나와서 일을 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내가 지닌 업무관련 전문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 당혹스러움은 물 길어오는데 두 시간이 걸리는 마을에 우물을 짓겠다, 계획을 세워도 관심이 없는 지역 정부 담당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온다. 또는 아무렇지 않게 지각을 하고, 오후 3시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의 마감 연기를 당일 오후 4시에 요구해오는 현지 직원의 당당함. 또는 어마어마한 예산규모의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공사 업체가 선금을 받고 도망갔거나. 당혹스러움은 개발이론 지식의 부족에서 나오지 않았다.

 

물론 '현장'이어서 기운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현장'에 있다. 100% 맘에 드는 곳은 절대 없고, somewhere over the rainbow 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가끔 경력 상담을 해오는 친구들에게도 단호하게 말한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이고, 보람도 있고, 스스로 동기 부여도 되고, 연봉도 맘에 들고, 동료들도 좋고, 회사 문화도 마음에 들고, 생활하기도 안전한, 그런 좋은 직장은 없다. 그래서 이직은 당분간 고려하지 않는다. 뭔가 새로운 걸 경험해보려고 해도 코로나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나라 국경은 여전히 닫혀있다.

 

현장에서 살아야했던 지난 7년간의 경험은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그 7년을 가능하게 했던 1999년부터의 경험도 감사하다. 그 어느 것 하나 낭비되는 경험이 없었고, 교훈이 되지 못한 좌절이나 실패가 없도록 노력했다. 이 노력이란, 표현이 거창하지, 뭐 쉽게 표현하면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정도의 뜻이 되겠다. 

 

아무튼, 2020년 코로나는 온갖 잡다한 생각을 머리 속에 다 집어넣었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정말 'Do no harm'에 충실히 근거하고 있는가? 사실 숫자로 표현되는 성과들은 그다지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지만, 의미 있는 질적인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하고 궁금해졌다. 질적인 변화는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확산되는지, 지속가능성이라는 환상은 언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지난 7년간의 사업 보고서, 세부 활동 보고서, 사진, 성공사례 등 자료들을 계속 들춰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아....나 공부를 해야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근데 말이지... 내가 궁금한 주제들에 대한 연구들은 이미 다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 생각이 다 고만고만한가 보다. 다들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방법론으로 궁금증을 해소해서, 또 나와는 다르게 다들 부지런히 글로 써서 발표하고... 열심히들 사는 사람이 참 많아. 

 

공부를 해서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마음먹은 후 겨우 구글 검색 몇 번 했을 뿐이었다. 이미 다 연구가 되어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진짜 내가 궁금해하는 영역은 별로 사람들이 관심 없어하고, 그리고 정량적으로 표현해내기도 애매한 분야 같다. 

 

이렇게 간단하게 몇 줄 - 이미 다 연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라는 결론에 이르면서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갇혀서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만 내도 충분하건만, 왜 이렇게 나를 못 들볶아서 안달인가. 꼭 그동안의 일을 '공부'로 정리를 해야 하겠는가. 그냥 편안하게 살아, 그래도 돼. 충분해. 

 

아직 결론은 없다. 그냥 계속 생각 중이다. 하지만, 이 포스트의 결론을 적어보라고 한다면, 

 

버킷리스트가 하나 늘었다는 것 정도?

 

공부를 하는 것과는 어찌보면 상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The world's most beautiful libraries https://www.cntraveler.com/galleries/2014-09-02/10-of-the-worlds-most-beautiful-libraries  여기에 소개된 전 세계의 도서관에 가보는 것. 코로나 이전에는 일년에 한 두 개씩 해볼 수도 있겠다, 싶은 쉬운 버킷 리스트겠지만, 지금은 코로나 시대. 과연 가능할까? 

 

이렇게 또 삼천포로 빠진다. 내 인생은 여태까지 이렇게 순간순간 삼천포로 빠지다가 여기까지 왔다. 적응도 되지 않은 낯선 나라에 도착한 지 한 달여 만에 만난 코로나. 참으로 갑작스러웠고, 2020년 1월 30일 비행기에 오를 때만에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내 인생의 가장 낯선 삼천포. 

 

아무튼 나는 여기 도서관 모두 가보고 싶다. 당분간은 쉽게 못간다고 생각하니 더 몸이 근질근질해지고 더 빨리 가고 싶어 진다. 

 


특히 여기. 그나저나 멕시코 코로나 상황은 어떤가 검색해봐야겠다. 아... 이렇게 또 다른 삼천포로 빠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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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teca Vasconcelos, Mexico City

Biblioteca Vasconcelos is truly something to behold. Inside, you'll find more than 470,000 books stacked in hanging shelves, with curious details like see-through floors and a white whale skeleton on display. Outside, the 820-foot building (made of concrete, steel, and glass) sits in the middle of a lush botanical garden containing flora native to Mexico. So if you're looking for a little nature with your culture, you know where t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