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4. 13:40ㆍ별 일 없이 산다
호텔 발코니에서는 멀리,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가까이서 탕가니카 호수를 볼 수 있다.
구름인 듯 희미한 수평선도 보이고, 그 건너편은 콩고다.
탕가니카 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라는데, 관광객 유입에는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하다.
이 호수는 콩고, 부룬디, 탄자니아, 그리고 잠비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고,
빅토리아 호수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호수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바다와 다름없다.
호숫가를 바다 해변이라 부르며, 휴식을 취하고, 실제로 얼핏 보면 바닷가 같이 느껴지는 곳도 있다.
나도 2014년 겨울과 2015년 봄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즐기고 감상할 것이 많지 않다보니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었다.
그때 처음 생긴 까르푸를 보며 드디어 부룬디에도 대형마트가 들어왔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도 있다.
그 까르푸는 이제 망해서 없다.
부룬디에 도착한지 4일이나 되었을까, 오미크론 변이가 남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강타했고,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거쳐서 귀국해야 하는데
에티오피아는 1년 이상 지속된 내전이 더 격렬해져서
이웃 국가 에레트레아와의 평화협정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젊은 총리 아비 아하마드는
TPLF 반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직접 전장에 나선다고 한다.
오미크론으로 혹시라도 한국이 자국인까지 포함해서 국경을 걸어 잠그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아디스아바바를 거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찾아야 했고,
내전으로 공항이나 항공기가 공격받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졌다.
감염병의 원인을 인류 모두에게서 찾아야 하는 반성 없이
변이가 발견된 나라를 죄인 취급하는 것도 안타깝고,
아프리카는 대륙인데, 늘 하나의 국가처럼 취급을 받는 것도 안타깝다.
예전에 이곳에서 같이 일했던 현지 직원을 만났다.
그는 코로나로 부룬디 물가가 심각하게 올라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코로나로 죽거나, 배고파서 죽거나 그들에게 기아와 죽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그래서 소위 잘 산다는 나라에서 코로나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게 오히려 안쓰럽다나...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남의 발등의 불은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코로나가 드러낸 삶과 죽음의 기로, 불편해서 외면해 온 불평등의 여러 얼굴들을 가지고
새삼 소란을 떠는 느낌이란다.
아이들과 함께 아동인권과 지속가능한 개발목표를 함께 읽고 생각해보는 워크숍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와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고 세상이 약속한 SDG를
좀 더 긍정적이고 힘차게 얘기해주고 싶은데,
냉소적으로 살지 않기 위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마음 한편이 공허해진다.
11/20 일기에서도 썼듯이
누군가의 귀에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듣기 좋은 선언이
다른 누군가의 귀에는 공허한 약속이 될 수 있어서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을 만난지 3일째,
이러저러한 활동에 신나게 참여하는 모습이 해맑고 보기 좋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룹 토의가 있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궁금하다.
마을 뉴스를 만들고 발표하는 시간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뉴스 앵커와 현장 리포터로 역할극을 해내는 재치에는 함께 웃는다.
미래는 거창하고 화려한 수식어로 무장한 문서에 있는 게 아닌데, 자꾸 잊어버린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러 온건데,
오히려 이들이 내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본다면,
덜 냉소적으로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할 수 있는 동기부여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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