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4] 1년 놀아도 안 죽어-띄엄띄엄 제주걷기 13 : 쓰레기, 쓰레기 ㅠㅠ

2021. 10. 14. 13:08별 일 없이 산다

추자도 모진이몽돌 해수욕장 - 이 쓰레기를 어쩔 것인가!

 

  1. 우도를 빼고 드디어 모든 올레길을 다 걸었다. 요 며칠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한참 열심히 걷다가 소낙비를 맞은 날도 있었고. 그러다 오늘은 웬일로 아침부터 하늘이 맑다. 오늘같이 환한 날은 마지막 남은 우도 섬을 걸어서 올레 완주를 기념했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하는 날이다. 1차 때 고열과 근육통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긴장하고 있다. 

  2. 내가 지내는 중문에서는 하늘이 맑았는데, 백신 접종 병원이 있는 서귀포 신시가지 오니 하늘이 흐리다. 어제도 그랬다. 애월, 한경쪽은 비가 쏟아졌는데, 중문에는 비가 안 왔다고 한다. 한라산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 날씨가 다 다르고, 같은 동서남북도 동네마다 또 다르다. 

  3. 올레길을 걷는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드라마처럼, 모든 날이 아름다웠고 행복한 산책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 매우 불편했다. 쓰레기 때문에 분노가 쌓이는 기분이랄까. 추자도 모진이몽돌 해수욕장 사진만 올렸지만, 사실 페트병과 비닐 쓰레기가 난무하는 해변과 산길을 만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쓰레기를 줄일 수 없다면, 적어도 아무 데나 버리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개인이 줍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마음이 정말 무겁다. 생수 사 먹지 말고 물병 가지고 다니는 사소한 노력으로도 쓰레기를 많이 줄일 수 있는데, 해변에 널브러진 생수병들이 매우 매우 짜증스럽다. 

  4. 이제 제주를 떠나기 전까지 보름 남았다. 하루하루 카운트 다운 하다보니,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진다. 더 많이 보고 싶고, 더 많이 걷고 싶은데 2차 백신 접종으로 2-3 일 지켜봐야 할 것 같고, 중간고사도 있고... 아쉽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느낌도 들고 복잡 미묘한 심경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기름, 올리브유는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500 그램짜리 고추장은 다 먹었고, 주방세제나 화장실 청소용품도 다 써가는데 새로 사기 좀 애매하다. 화장지도 이제 3롤 남았고. (그런데 화장지는 사야겠구나. 오늘 들어가는 길에 화장지는 낱개로 된 것을 몇 개 사 가지고 들어가야겠다.) 지난 2월 통영에서 다쳐 검게 멍이 들었던 오른쪽 엄지발톱도 자랄 때마다 잘라내기를 7개월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깨끗해졌고, 매일 가지고 다니며 쓰느라 닳고 지저분해진 수첩은 이제 깨끗한 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안주해서 사는 삶도 의미있지만, 이렇게 떠돌이로 여기저기 다니며 사는 삶의 가장 큰 묘미 중 하나는 내가 머무는 공간의 시작과 끝이 분명 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는, 결국은 똑같은데 평범을 넘어서게 되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일상에 무디어지지 않고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억지로라도 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일상을 채우며 지내게 될까? 이 나이를 먹었어도 나는 아직도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대단한 노후 대책도 없지만, 그 댓가로 얻은 이 기대감을 천대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