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9. 14:38ㆍ별 일 없이 산다

추자도에 처음 도착하자 마자 느낀 것은 1박 하길 잘 했다는 것이다. 올레 18-1길은 약 18km 인데 이걸 내가 하루에 완주할 수 없으니 당연히 1박이 필요했지. 느긋하게 걷고 싶다.
날씨가 정말 좋았던 이유가 크다. 어쩜 이리 아기자기하게 예쁜지. 그러다가 나발론 하늘길을 걷는데 아찔한 절벽과 계단에 아기자기하지만은 않구나. 엄청난 매력이다. 그런데 또 예초리 해안을 걷다보니 제주도 올레길의 축소판이랄까. 난이도 상이라고 알려진 명성만큼이나 어렵다. 하추자도 걷는 길은 되돌아 가거나 중간에 포기할 수 없어 무조건 한 번에 걸어내야 한다. 물론 중간에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버스정류장까지 찾아 갈 바에 그냥 걷는게 차라리 더 나은 수준의 코스이다.
등대산이나 봉골레산 또는 돈대산, 나발론 하늘길 정상 등에서 바라보는 바다 ㅡ 신비한 원근감을 지닌 추자도의 무인도는 수묵화처럼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온갖 매력이 다 있으니 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올레길에 포함이 되었나보다. 추자도만 왔다가도 좋을, 완벽한 경치를 자랑한다.
그러나, 혼자 밥을 먹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퇴짜를 맞았던가. 그나마 관광안내소의 친절하시고 싹싹한 직원이 몇 군데 추천을 해주셨다. 물가도 비싸다. 특히 민박이 수준에 비해 비싸다. 내가 원래 예약하려던 곳은 갑자기 충동적으로 날짜를 바꾼 10월 8일에는 방이 없다해서 다른 곳을 구했는데 인터넷 정보를 다 믿을게 못 된다. 그냥 개운하게 씻을 수 있고 안전하게 잘 곳이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섬이라 물가는 당연히 비쌀테고.
어찌어찌해서 충동적으로, 가보자 추자도! 이런 마음이 들어 바로 다음 날로 예약을 해서 왔다. 1박을 하니 추자도를 구석구석 느긋하게 걸으며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고, 가장 마음에 부담이 되었던 올레 18-1길을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마무리 짓는다. 3만보를 걸으니 불을 끄자마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2일째 ㅡ 아침 8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어제 못 걸은 올레길을 마저 걸었고 나발론 하늘길까지 완주!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아찔한 계단 오르기 어려울 것 같다. 1인 손님도 반겨준다는 추자도 오누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제주로 되돌아가는 4시반 출발 배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2시간 정도 남아서 등대산을 어슬렁 거리다가 편안해보이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제주도 여행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곳.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 올 가치가 충분한, 아니 충분하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하추자도에는 다리가 너무 아퍼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걸었던 순간도 있었으나 출발 2시간을 남기고 되돌아보자니 그마저 소중하게 느껴진다.
종아리는 여전히 쑤시고 허벅지는 후들후들거려도 어제도, 오늘도 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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