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3] 3일 연속 통행 금지 이틀째 - 코로나 격리 중 시간 관리

2020. 5. 24. 07:46별 일 없이 산다

더 긴 통행금지도 견디어 냈으면서, 중간에 자유를 즐기다가 다시 통행금지를 3일 연속당하다 보니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이제 내일 딱 하루 더 남았다. 

 

코로나 때문에 조직 운영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은 일이 진행될 수 있게 준비를 해두고 있다. 통행금지가 통행제한으로 완화되고 민간 영역의 업무 재개 승인도 나고 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슬슬 외부 업무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참 많이 달라질 것 같다.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물론 많다. 코로나와 관련된 거창한 담론들이 이제 서서히 아주 구체적으로 일상과 밀착된 사례들로 하나씩 얼굴을 드러낼 텐데, 얼마나 빨리 익숙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 통행금지와 격리기간 중, 재택으로 가능한 일들은 계속 하겠지만, 상당 부분의 업무가 중단되면서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었다. 평소에도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약간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의도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시간의 양이 엄청 늘어나고 보니 나의 시간관리 능력, 자기 통제력, 자기 계발에 대한 의지의 수준을 아주 적나라하게 평가해볼 수 있었다. 동시에, 그런 나를 인정하고 스스로 들볶지 않게 하기 위한 정신적 에너지도 많이 소요되었다. 

 

생존이 문제였다!

암튼, 이 빌어먹을 코로나로 인한 격리기간 초반은, 생존이 문제였다. 통행금지 전에 사다 둔 식량과 물로 얼마동안을 버틸 수 있을까? 통금이 장기화되면 누군가 침입해오지 않을까? 나의 신변은 얼마나 안전한가? 국경이 봉쇄되었으니 어디로든 떠나지도 못하겠고, 나의 안전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이 뭘까? 모바일 데이터가 끊기고 나서는, 식량과 맞먹는 수준의 공포가 잠시 있었었고.

 

그러다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도보 이용이 허용되고 소규모의 식료품 상점 영업이 재개되었을때는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은 사라졌지만, 통금 전 겪었던 인종차별에 대한 기억으로 밖에 나가는 것이 안전할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안전에 대한 문제가 해결이 되자, 그제서야 '고민'과 '걱정' 하는 일 말고 '시간'을 의도적인 계획을 가지고 관리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겼던 것 같다. 

 

시간을 엮는 바느질과 뜨개질 -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그때부터 평소의 취미활동 중 하나였던 바느질과 뜨개질을 엄청 했었다. 뜨개질은 실이 없어서 마스크만 하나 겨우 만들었었고, 바느질은 탄자니아에서 가져온 기텡게 천조각들을 모아다가, 또는 멀쩡한 것들을 잘라서 ㅠㅠ 파우치도 여러 개 만들었고, 뭔가 바느질할 재료가 떨어질 때쯤, 집에서 뒹굴던 이케아 잡지와 신발 상자 두 개를 이용해 밀가루풀을 쒀서 사무실용 문구 상자로 개조를 시켰고, 

 

청소

3년쯤은 청소를 안한 듯한 부엌 가스레인지 환풍기 청소를 이틀간에 걸쳐서 했다. 덕분에 철수세미 하나와 고무장갑 하나가 희생되었고, 창문청소 등등 청소만큼 시간도 잘 가고 기분도 좋아지는 것도 드물다.

 

아랍어는 포기하자

유투브를 통해서 아랍어를 좀 배워볼까 싶어서 한 1주일 가까이 하루에 40분씩만 투자해서, 내가 배울 수 있는 언어인지 아닌지 함 살펴보자, 결심을 했더랬다. 그러나 1주일은커녕 하루 만에 접었다. 뭔가 목구멍 뒤에서부터 깊이 내야 하는 그 발음을 나는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미안한 말이지만 아름답게 들리지가 않았다 ㅠㅠ 어차피 이곳에서는 오래 있을 수 없으니, 아랍어에 대한 미련은 그냥 버리는 편이 여러모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정신건강에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랍어는 그냥 앗살라말라이쿰과 슈크란으로 버텨야겠다. 캄보디아에서도 그렇게 살아남았었다. 

 

읽기 - <지리의 힘> 강추

책과 이런 저런 업무 관련 아티클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뭔가를 하루에 느긋하게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평소 궁금했던 World Happiness Index 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북으로 읽은 책 중에서는 <지리의 힘>이 추리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잘 읽혔고, 지금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코비드 때문에 읽은 책들도 하나씩 정리를 해둬야겠구나.  

 

보기 - 넷플릭스는 시원찮고, <지구본 연구소> 는 최고

넷플릭스와 유투브도 스트레스 해소에 매우 유용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추천해주는 것도 나의 잡식성을 다 담아내지 못했고, 다시 보고 싶은 옛날 영화도 없고 해서... 뭔가 다른 subsciption을 해야 할 것 같고, 유튜브에서는 최준영 박사님의 <지구본 연구소> 광팬이 되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두 번씩을 들은 것 같다. 삼 프로님과 최준영 박사님은 3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약 두 달간의 나 혼자 격리기간 동안 너무나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다. 감사합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법성포 굴비를 직접 사서 보내드릴 뻔했어요. 찾아갔을 수도 있어요. 감사합니다. 동생일 수도 있겠지만,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 어떻게 보내드릴까. 에피소드가 올라오는 족족 좋아요를 열심히 누르고 있다. 

 

쓰기 - 기록을 정리하기 위해 티스토리 시작 

한동안은 네이버에 열심히 블로그를 썼었더랬다. 거의 10년 가까이 운영해오던 블로그를 네이버가 꼴보기 싫어서 비공개로 전환하고 닫았는데, 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정기적으로 기록을 남기지를 못하면서 살아왔다. 지난 15년보다 더 많은 일들이 5년 사이에 있었는데, 제대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ㅠㅠ 

그러다가... 지난 기록은 일단 사진으로는 남아있으니 그대로 두고, 오늘의 기록부터 남기자는 마음으로 티스토리를 시작해서 일기장처럼 다시 글 쓰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록을 정리하기 위해 틈틈히 옛날 사진 폴더들도 정리하는 중이다. 그러다가 발견한 2010년도 코스타리카에서 찍은 평화로운 사진 발견!

 

2010년 가을 코스타리카 - 처음에는 죽었나 싶어서 살짝 건드려보기까지 했다. 
늘 이 가족들은 우리집 건너편 공터에서 죽은 듯 미동없이 평화로운 낮잠을 즐겼다. 

 

통행금지 기간 중의 압둘 무탈렙 골목길도 이렇게 한가하다. 고양이들은 길 한가운데도 아랑곳 않고 낮잠을 자고, 차들이 다니지 않은 길에는 새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날 때의 그림자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기록을 정리하기 위해 옛날 사진을 보다보니,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이런 순간이 있었나 싶은... 친구들에게도 몇 장 옛날 사진을 보내보고, 옛날 기억을 함께 떠올려 보기도 한다. 이렇게 추억할게 많은 나이가 되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살다 보니 코로나 같은 일도 겪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에게 과거의 흔적은 허락하신 신의 섭리를 곱씹어 본다.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 코로나 재난으로 수십만 명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인류로서,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어찌할 수 없는 개인으로서 - 우리 모두 인간의 한계를 목도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