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1] 제주 올레 1코스 절반 - 광치기 해변에서 목화휴게소까지

2021. 4. 12. 20:18한 걸음 한 걸음

섭지코지나 성산일출봉은 제주 올 때마다 찾았던 곳이지만, 광치기 해변은 늘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것 같다. 올레길 21 코스가 어디 어디 지나나 훑어보면서 광치기 해변이라니, 이름이 독특해서 언제고 함 가보자 했는데, 광치기의 이름에는 빛이 흠뻑 비추인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광치기 해변은 모래 해변도 아름다운데 물이 빠지면 갯바위가 드러난다 해서 썰물 때 시간을 맞춰서 찾는 사람도 있다 한다. 광치기 해변에서부터 목화휴게소까지 걸었으니 7km 걸은 셈인가 보다. 오조항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셨고, 매번 어제 최고의 장관을 오늘 갱신해주는 자연의 아름다움 덕분에 천천히 걸었고, 가끔 만나는 정자 앉아 넋 놓고 멍 때리기도 해서 7km를 한 5시간 만에 걸었나 보다. 그러니 도통 살 빼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내 마음과 정신의 좋은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믿으며 하루를 또 온전히, 감사히 즐겼다. 

 

 

나는 광치기 해변부터 시작 

물이 빠지면 광치기 해변에는 이런 갯바위들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성산일출봉은 어느 각도에서 보던지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웅장하다.

 

 

광치기 해변은 1코스의 끝이자 온평올레까지 이어지는 2코스의 시작이기도 하다.

도장 야무지게 찍어주고 나는 역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광치기 해변에서 내리겠다고 벨을 눌렀는데, 버스 기사님은 내가 내릴 정류장 같아 보이는 곳을 그냥 지나치셨다.

난 버스로는 초행길이니 저기가 정류장이 아닌가 봐, 하고 조용히 기다렸는데

기사님이 급정거를 하시더니 (위험한 급 브레이크는 아니었음) 아, 죄송합니다, 하시며

터진목, 이곳에서 내려 주셨다. 

 

제주 4.3의 흔적은 중산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해변을 걷는 길에도 종종 만난다.

국가 형성시기에 일어난, 아픔을 차마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비극을

성산일출봉과 같은 절경과 고스란히 함께 지니며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내보여 주어야 하는 제주의 땅과 바다가 정말 고생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냥 직진을 하다가는 코스를 놓친다.

표지판을 놓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긴장은 하면서 걸어야 한다.

터진목에서 나와서 조금 올라가면 이런 아기자기한 계단이 나오는데, 

여기로 가야한다.

 

 

그 계단을 오르면 이런 곳이 나오고, 여기에도 제주 4.3 표지석이 있다.

 

성산일출봉을 오를 계획은 없었다.

매번 오를 때마다 조금 벅찼었으니, 지금의 내 체력으로 올라갔다가는

광치기에서 시작해서 성산일출봉에서 끝나는 일정으로 하루를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오늘의 입장은 모두 마감되었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관광객들은 무료탐방길로 향한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향한다. 

 

 

일출봉에서 내려와 성산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한도교도 걷고 오조리 조개체험장도 지난다.

 

 

오조항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방금 구워진 초코 크로아상도 하나 먹고

오랜만에 친구와 시차 맞춰 통화도 하고 일기도 썼다. 

 

카페를 나와서 송난포구 거쳐 목화휴게소 가는 길 

 

 

길을 걷다 보면 버려진 펜션이 많다.  

살짜기 흉물스러운 곳도 있고, 관광산업도 중요하지만 뭔가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언가가 '산업'이 되는 순간, 속 터지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드디어 목화 휴게소 도착. 도장 찍는 재미를 한 껏 누리고! 

 

 

나머지 8.1 km를 완주할 자신이 없고, 시간도 애매해서 여기서 집에 돌아가기로 한다. 

 

시흥리 마을회관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데, 

목화휴게소에서 시흥리 버스정류소까지 걸어가는 길이 약 1.3 km - 이 정도는 껌이지. 

 

하지만 카카오 맵이 안내하는 길은 사유지인지 막혀 있었고, 

조금 돌아가야 해서 아까 그 흉물스러운 폐가를 지나 조금 한적한 길을 걸어야 한다. 

 

일주동로를 건너서 요런 건물이 나오면 우회전.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시흥리 마을을 통과해서 

 

버스 시간 확인하면서 여유 있게 걸어 시흥리 사무소 정류장에 도착.  

 

이제는 버스 노선도 익숙해서 버스 안에서 여유롭게 졸기도 하고, 

정류장을 놓쳐도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가면 되지, 하는 여유도 생긴다. 

 

 

이름대로 빛이 넘쳐나는 광치기 해변을 충분히 감탄하기도 전에 나타난 터진목 4.3 표지석을 보며 

이 상처를 제대로 보듬고 위로하며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왔는지 갑자기 궁금해져 왔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인터넷을 뒤져본다.  

3만이 넘는다는 희생, 그리고 3만을 넘어서 유가족과 공동체가 그동안 오롯이 겪어야 했던 상처와 아픔에서 

우리가 제대로 배움과 성찰을 얻어내지 못하면 

어쩜 우리는 더 아프게 같은 비극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설마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 싶겠지만, 

현재 가깝게는 미얀마에서, 그리고 시리아, 아프리카 신생국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내전과 갈등을

우리는 지금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인간에 대한 희망이 한없이 추락한다.

그래서 더 겸손히 신 앞에 모두를 위한 평화와 위로를 기도하고,

어디 한 군데 쓸모없는 이 몸뚱이로 작게나마 실천 할 수 있는 일들이 뭘까,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