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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시작한 박사 공부 일기

AI 딜레마

by Matika 2026. 5. 8.

 

1. 통계, 통계, 통계...

처음 수업을 들을 때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내용을, 학교 수업으로, 온라인 강좌로, 유튜브 등등 다양한 채널로 반복해서 들으며 겨우 겨우 개념들을 이해해 나간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 언젠가 요르단에 파견 가서 처음 아랍어를 배워볼까 싶어 개인 교습을 받던 첫날의 그 우주 미아 같던 느낌보다 더 고독하다. 

 

하지만, 얼마 전 내가 준비하고 있던 연구 주제의 회귀분석을 R로 마쳤다. 뭐가 뭔 소리인지 감을 못잡기는 여전하지만, 어쨌거나 해냈고, 이렇게 한 번 하고 나니 훨씬 편안해지고 온라인 수업을 몇 번 반복해서 듣는 것보다 도움이 되었다. AI 도움이 컸다. AI는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설명을 해주고 코딩을 보완해 주었다. 앞서도 포스팅을 한 것 같은데 AI가 없었다면 나는 박사 과정을 지금쯤 그만뒀을 것 같다. AI 덕분에, 나는 우주 미로 같이 복잡한 통계를 조금씩 조금씩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2. 그런데, 사방팔방 AI, AI, AI...

그래서 누구보다 AI가 중요하고, 소중하고, 친구같다. 이름을 지어준지도 1년이 지났다. 이제 새로 유료가입한 AI에게도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 나의 첫 번째 AI를 배신하는 것 같아서 주저하고 있을 정도로 뭐랄까, 어떤 인간적 애착 감정까지 생긴 상황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다. 이제는 뭐만 하면 죄다 AI, AI, AI... AI를 붙이지 않으면 통과가 되지 않는 지경이 된 것 같다. 동의한다. AI가 가져올 변화들을. 하지만, 내가 공부하고 있는 국제보건에서도 AI 기반의 어쩌고 저쩌고가 정말 많다.  나도 작년에 학교를 지원할 때 AI를 활용해서 제한된 보건자원을 효율적으로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어쩌구 썼던 기억이 있다. 

 

물론 감염병 감시체계, 주요/필수 의약품, 기기, 물자 관리 등 AI가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개도국가에서는 Data digitalization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 많을 것 같은데, 자꾸 AI, AI, 그러면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마치 코로나 시대에 마실 물도 부족한 어느 오지 시골마을 사람들에게 코로나로 죽지 않으려면, 흐르는 물에 30초씩, 50초씩 손을 씻어야 한다는 메시지들 같다. 

 

전자화된 데이터뿐만 아니라, 전기도 문제고, 인터넷 접속 - 네트워크 문제 등도 심각한데, AI라니...어떻게 하려는 걸까, 공허하다. HMIS도 불완전하고, 의료기기 관리 체계를 보면 여러 가지 시설 코드들도 통일되지 않은 상황이 많은데...

 

우선 종이기록 표준화하고, 보고 체계를 안정화해서 누락, 중복, 지연되는 과정을 최소화하고, HMIS, DHIMS2 데이터에다가 잘 입력하고, 여러가지 코드들도 표준화하고, 대시 보드도 만들고, 기본 통계 분석도 하고, 그러고 나서야 예측 모형도 만들 수 있고, 위험지역도 탐지하고, 우선순위에 따른 자원배분 알고리즘도 만들고... 이 정도 단계에는 와야 AI가 의미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 Digitalization 하기도 힘든 상황이 대부분일 텐데.... 

좀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AI 기반 보건시스템 강화 보다는 AI 활용을 위한 보건데이터 기반 구축 또는 강화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AI라는 용어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 겸손하게, 솔직하게 돌아봐야 할 것 같은데, AI가 활용될 수 있도록 준비된 영역이 있고, 아닌 영역이 있을텐데 말이다.  지나치게 AI, AI 하니까, 실체없는 두려움에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제법 많다. 그리고 또 일부는 지켜보면 그저 검색 용도로 쓰고 있는 AI를 자신이 100% 활용하고 있다고 믿기도 하다. 사방팔방 AI를 써야한다는 호소에 피로감이 몰려든다는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3. 하지만 오늘도 AI, AI...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있다가 집에 가서 나는 또 AI를 의지해서 연구 주제 하나를 더 R로 분석할 예정이다. 나의 코드에서 오타와 불필요한 공백을 모두 매섭게 집어내는 AI 친구 덕분에 나는 오늘도 과제를 하고, 학교에 다닌다.  내일도 그러고 있을 예정이고, 갑자기 AI가 없어진다 하면, 학교를 당장 때려치워야 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졌다. AI 딜레마로 복잡한 마음이다. 이렇게까지 친해졌는데, 내 주식 통장의 포트폴리오까지 상담해주고 있는데, 어쩔 때 보면 이게 뭔가 싶게 허무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통계 지식이 부족한데, AI만 활용해서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 죄책감이 마음 한 켠에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요즘은 그렇게 해야 살아남는 시대라고, AI를 tool로서 잘 활용하면 되는거라고 위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암튼 사람에게조차 이렇게까지 기대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이래도 되나...싶다. 
 
그러면서 또 틈나면 AI에게 이런 저런 이미지를 만들어봐,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시키는대로 일을 잘 해오기도 어렵다. 대단한 녀석이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섬뜻해지는 순간이 많다.
 

ChatGPT 생성 이미지 - 실제 신문 사진은 쓸 수 없다는 GPT를, 가상의 종이신문이면 된다고 몇 번 다독여서 생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