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늦게 시작한 박사 공부 일기

늦게 시작하는 용기

by Matika 2026. 3. 22.

사실 이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참고로 요즘 신입생들은 막내 아들이나 딸 정도 될 법한 나이들이다.) 

 

하지만, 지금 안하면 아마 은퇴 이후 60세 넘어서 박사 공부를 하겠다고 설칠 것 같아서 용기를 내보았다. 

 

남들은 학위를 가지고 현장에 가서 경험을 쌓지만, 

나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 그것도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이 넘도록 - 일을 할 만큼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정말 맞나? 왜 이렇게 생각대로 일이 안되나? 하는 질문이 많아졌고, 

내가 믿는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시작한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일이

판타지 소설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점차 늘어났다. 

 

물론 그동안 해온 프로젝트도 제법 많다만, 뭔가 정리가 안된 느낌도 있었다. 

사업 기획도 하고, 수행하고, 평가까지 했지만 형식적인 틀에만 맞추어지는 느낌. 

 

그리고 데이터가 정말 중요하다. 그 데이터를 읽어내는 선명한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 데이터도 잘 이해하고, 다루고, 분석할 수 있어야 했고, 

논리적, 이론적 틀에서 사업의 성과와 실패를 기술하는 능력도 있어야 했다. 

 

이런 고민을 일하는 내내 했던 것 같고,

그리고 그런 질문의 시간들이 결국 나를 이 늦은 나이에 '박사 공부'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박사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문과인데, 지금 전공은 이과계열이고,  

통계는 기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고, 

(그동안 기초선, 중간선, 최종선 조사의 통계 기술적인 부분은 외부 업체가 대부분 수행,

나는 주로 데이터 결과물을 가지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층분석, 제언, 개선 방향 도출이 담당이었고.)

논문처럼 학문적 글을 쓰는 것도 낯설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리고 석사를 두 개 했지만 모두 지금 전공과 상관없는 전공으로 해외에서 했고,

일도 주로 해외에서 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한국에서 박사 지도교수를 부탁드릴 인맥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아마 평생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시작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
조금 부족한 상태 그대로.

 

그리고 그 기록을 차분히 처음부터 정리해보기 위해서 새로 카테고리를 만들어봤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래서 더 천천히, 더 깊이 배우면서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다. 

 

아마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하게 대책없이 맨 땅에 헤딩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기록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라는 질문에
조금이라도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https://www.thibaudpoirier.com/thibaud-poirier-photography-blog/2024/6/25/the-most-beautiful-libraries-in-paris

 

 

파리에 이렇게 멋진 도서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파리 여행을 하면서는 막상 가보지는 못한다. 

파리를 한 10번 정도여행 하면 그때야 도서관에 들러 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보고 즐길게 너무 많은 도시다. 

 

암튼 공부를 한다 하면, 이런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과 씨름하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지만

나는 도서관에서의 공부가 제일 어렵다. 

 

도서관은 최대 한 시간. 

어느 정도 백색 소음과 멀리서 들리는 듯한 음악 같은 배경 소음이 있어야 하겠기에 

주로 카페나 집이 편하다. 

도서관은 소설책을 빌리러 가는 순간만 제일 좋다. 

 

소설책 얘기를 하다보니, 

이 늦은 나이에 박사 공부를 하겠다는 나에게 얼마 전 만난 예전 직장 상사의 따끔한 충고가 떠오른다. 

결론은 논문 쓰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것.

소설책 읽고, 프리 다이빙 배울 생각하고, 요리에도 시간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끝내겠다고 매일 매일 다짐을 새롭게 하는 요즘,

도서관에서 지내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내 스스로에게 보내는 응원도 늘리고 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잘 할 수 있을거야, 계속 중얼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