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1. 16:11ㆍ한 걸음 한 걸음
일주일 내내 비가 와서 꼼짝을 못 했는데, 제주 4.3 유적지 답사 일정이 잡힌 9월 18일은 다행히도 날이 환하게 개었다. 오늘의 일정은 조천중학원 옛터,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주둔지 옛터, 우뭇개 동산이고, 이 세 곳 모두 유적지에 대한 안내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3 유적지로서는 잊히고 있는 곳이다.
조천중학원 옛터에는 보건소가 들어서 있고, 길을 건너면 바로 경찰서가 있다. 4.3 당시에는 조천경찰지서라는 이름으로 역시 길 건너 조천중학원과 마주하고 있었고. 경찰서 앞에는 4.3 사건을 폭도들이 주도한 반란이라 표현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조천 중학터는 해방기 제주의 대표적인 중등교육기관이었다고 한다. 일제 해방 이후, 제주도는 교육열기에 휩싸였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합쳐 마을마다 초등학교 세우기 운동이 전개되었고, 면 단위별로는 중등학교 세우기 운동도 일어났다. 조천 중학원은 주-야간 모두 합해 학생이 약 2백여 명이었고, 교사들은 모두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었으며, 당시 하귀 중학원과 함께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학교로 알려져 있었다 한다. 4.3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인 이덕구도 교사로 이곳에서 재직 중이었고, 1947년 3.1절 시위와 같은 날 벌어진 경찰의 민간인 발포사건, 이에 항의하는 민관 총파업으로 미군정과 서북청년단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학생과 교사가 바로 앞 경찰서로 끌려가 수시로 고문을 당하고 감시를 받았으며, 1948년 3월 6일 조천중학원 2학년생 김용철이 결국에는 고문치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시신을 부검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과실이 드러났고, 미군정도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당시 관련자 조천지서 경찰관 5명에게는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진상이 분명하게 규명되거나 형이 집행되지는 않은 상태로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보건지소 바로 옆 공터. 사유지인데 경찰지서에서는 고문이 이루어지고, 이곳에서는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한다.
보건소 주차장 바로 옆이다.
경찰서 앞 표지석. 아직까지도 4.3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제주 4.3을 정명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나서 서북청년단 주둔지로 이동.
성산 K마트 뒤편에 있는 사유지인데 완전히 방치되어 지금은 고양이들 세상이 되었다.
건물 안에 높이 자라 올라 숲을 이룬 나무들이 버려진 생활쓰레기들과 함께,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아직도 여러 가지 시각으로 해석이 분분하고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하는 아픈 역사적 사건 중 하나다.
제주는 빨갱이 섬이라고 교육을 받아 제주도민을 죽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사실 여부를 다시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1947년부터 서청단원들이 입도하기 시작했고,
이곳에 주둔한 특별중대는 서청 출신 70여 명이 군인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편성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제주도민을 학살한 가장 대표적인 학살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제주 4.3 당시 가장 악명 높았던 서청 특별중대의 주둔지로 역사적 기록을 위해
기억해두어야 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보이는 것처럼 이렇게 버려져 있다.
도로와 인접해 있지 않은 맹지로, 바로 앞에는 마트가, 옆에는 주택단지들이 세워져 있는데
이 곳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주변에서 좋아하지 않겠지만,
역사를 기록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답사지인 성산일출봉 아래 우뭇개 동산.
제주도 여행했다 하면서, 여기 안 와본 사람 있을까?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 안 찍은 사람 있을까 싶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도 수많은 사람이 4.3 기간 동안 목숨을 잃었다.
사진이 비스듬하게 찍혔지만 글씨는 읽히므로 옮겨 적는 것은 생략
생략이지만, 짚고는 넘어가야지.
물고기 잡는 방법으로 쓰곤 했는 다이너마이트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이 아름다운 곳에 끌려워 사람이 학살당했단다.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 일출봉 오르는 길에 있는 터진목도 충격이지만 우뭇개 동산도 충격적이다.
사람들이 대체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야 (귀신이 씐 것인가)
이 확 터진, 정신이 아찔하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음침하고 어두운 곳으로 가서 죽이라는 말은 아니다만,
정말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 앞에서 제일 못 할 짓을 한 것이다.
우뭇개 동산 뒷 배경으로는 펼쳐진 풍경을 또 머릿속에 그려보자.
오조리와 지미봉, 일출봉과 섭지코지 전망이 멋진 대수산봉, 그리고 광치기 해변까지...
이런 곳에서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사람들은 잊히고 있다.
나 역시 이 길을 여러번 걸으면서도 우뭇개 동산에서 벌어졌던 일은 올해 이 활동을 하면서 알았다.
터진목처럼 안내판을 빨리 세워야 할 텐데...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 빽빽일 텐데... 마음이 급해진다.
이 동산 건너편에는 또 숨막히게 아름다운 일출봉의 절벽과 해안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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