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1. 15:16ㆍ한 걸음 한 걸음
올레 12길은 지난번 무릉외갓집에서 산경도예까지 걸은 적이 있다 (https://matika.tistory.com/104). 6월 25일이었는데, 어느새 9월 6일. 너무 무서워서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 이름 볼드모트처럼, 이제는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놓기가 무섭다 ㅠㅠ
올레 12길 남은 구간인 산경도예와 용수포구를 검색해보니 용수포구는 여러 노선이 있지만, 배차간격이 큰 지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노선은 피하기로 한다. 주변을 이리저리 확인해보니 내가 제일 자주 타고 다니는 202번이 반갑게도 용수리까지 가고, 용수리에서 용수포구까지 걷는 길은 올레 13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수리에서 내리는 걸로 해서 202번을 타기로 했는데, 요즘 날씨가 변덕 같아서... 12길을 걸으려다가 두 번이나 헛걸음을 했다. 하늘이 괜찮아 보이다가도 용수리에 도착하면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비가 온다고 했다가 환하게 개이고, 환하기로 했는데 비 오고,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에는 모험을 걸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두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행히 9월 6일 월요일, 성공!
하지만 막상 용수리 정류장에 내려서 길을 시작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사진을 보다시피 하늘이 우중충한 것이 비가 언제고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듯한 모양새다.
그래도 일단 걸어보기로 했다.
얼마전 걸었던 무릉신평 곶자왈 신평리 동네길을 걷다가
누릿 누릿 황토색 또는 초콜릿 색으로 다음 경작을 기다리던 밭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 동네에서는 이제 밭에 새로이 뿌리를 내릴 모종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용수 2길, 이 곳 사거리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올레길 방향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저 멀리 개조심하라는 간판 옆에 편히 쉬고 있는 개도 지나고
(가까이 가니 엄청 짖기는 했다)
용수리 포구 절부암과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표착기념관이 곧 나타난다.
이곳이 표착기념관이고, 천주교 용수 성지로 순례자의 집도 근처에 있다.
여전히 날은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서 계속 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저기 보이는 섬이 뭔지 몰라 궁금해하며 걷다 검색을 했는데
이게 그 유명한 차귀도였다.
용수마을 방사탑도 지나고,
차귀도를 옆에 끼고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 나오는데 이곳 해안 절벽도 엄청난 명소다.
제주어로 생이는 새, 기정은 벼랑, 바당은 바다를 뜻한다고 한다.
바당의 뜻은 알고 있지. 제주바당 횟집이 서울에 많았으니까.
암튼 생이기정 바당은 새가 많이 살고 있는 절벽 바닷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겨울철새의 낙원으로 가마우지, 재갈매기, 갈마기들이 떼지어 산다고 쓰여있다.
생이기정 바당은 당산봉 지오트레일의 일부인 모양인데,
이곳 절벽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가마우지 때문이란다.
잠수성이 뛰어난 물새이지만 기름샘이 없어 잠수를 한 후에는 깃털을 말리기 위해 주로 갯바위나 해안절벽을 이용하고
이때 깃털을 말리면서 배설하는 습성때문에 화산재 절벽이 배설물로 하얗게 변했다는 설명이 있다.
당산봉을 지난다. 원래는 당오름이라고 불렸다 하고
옛날 당오름 산기슭에 뱀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이 있었는데
이 신을 사귀라고 했다가, 이후 와전되어 차귀가 되면서 차귀오름이라고도 불렸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수월봉 해안절벽이다.
용머리 해안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절벽 사이로 물이 고여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놓은 안내판도 있고,
또 오누이의 슬픈 전설 때문이라는 안내판도 있다.
수월봉만 따로 와봐도 좋을 정도로 볼 만한 곳이다.
수월봉 정자를 지나고, 그 옆에는 고산기상대가 있다.
버스 타고 다니면서 무슨 건물인가 궁금했는데, 기상대였다.
수월봉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근사하다.
보다시피 하늘은 여전히 비오기 30분 전 얼굴을 하고 있고.
고산기상대에서 방향을 틀어 내려가는 길을 잡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밭에 심긴지 얼마 안돼 보이는 풋풋한 녹색이 땅과 잘 어울리는 길을 한 참 걷는다.
왠지 낙서를 하고 싶어지는 이런 벽도 지나고,
여기는 경관을 복원해두었다는데, 어떤 경관인지...사방이 공사 중이었다.
그리고 비닐류 쓰레기가 너무 많았다.
농업용 비닐, 플라스틱류는 정말 대책이 시급시급하다.
대선 후보들에게 당장 정책을 질문해야 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렇게 버려진 쓰레기들도 많고 ㅠㅠ
여기서 방향을 바꿔 조금 더 걸어가면 신도포구쪽 해변이 나온다.
신도 바당올레, 언제나 반가운 안내판!!
여기는 올레 화살표도 있긴 하지만, 쓰레기가 참 안쓰러워서 사진을 찍었고,
여기도 ㅠㅠ 버려진 농업용 폐비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
우산은 있었으나 우산이 무색해지는 바람이 불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경도예까지 1시간 정도 더 걸어야 했는데,
길을 그만 둘 수도 없는 것이, 버스 타러 가는 길이 이 길이라 어차피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못 찍고 경보로 드디어 도착!! 이렇게 올레 12길 완주!
비를 막아주는 버스정류장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버스탈 준비를 한다.
정류장에 적힌 버스 시간표는 이제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ㅋㅋ
여기 아래 사진의 브런치 카페는 6월 25일 한창 페인트 중이셨는데,
이제는 미니 미키 마우스 두 마리 그림이 다 완성되었다.
새로 생긴 건지, 아님 가게 외관만 바꾸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장사가 잘 되셨으면 좋겠다.
숙소까지 오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그동안 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정류장에 내려서도 비가 좀 그칠까 싶어 기다려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정류장에서 제일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으로 가서 비 그치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렇게 걷는데도 살이 조금도 빠지지 않아 나름 식단 관리중인데
어쩔 수 없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햄버거도 하나 시켜 먹고
한동안 비내리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비가 그칠 조짐이 보이지 않아 그냥 있으나마나한 우산을 어정쩡하게 펼쳐 들고 바람에 맞서 집까지 걸어왔다.
홀딱 젖었지만, 두 번이나 퇴짜 맞았던 길을 완주했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내가 맘 먹는다고 걸어지는 길이 아닌 것이다.
오만하지 않고 늘 겸손하게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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