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3] 제주 올레 10길 절반 - 하모체육공원에서 송악산까지

2021. 7. 19. 00:40한 걸음 한 걸음

송악산 서편 슬픈 섯알오름, 6.25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학살 현장  



또 절반만 걸었다. 올레길을 걸으면 걸을 수록 정말 궁금해진다. 어떻게 사람들은 올레 코스 하나를 하루 만에 걸을 수 있을까. 걷는 도중 해찰이 심하긴 하지만, 나는 평균 체력 이하인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다들 하루에 한 코스씩 걷고들 계시는지 정말 궁금하다.

숙소에서 하모체육공원이 있는 하모 3리까지는 202번 버스가 다닌다. 출발 전부터 올레 10길에 위치한 제주 4.3 유적지를 미리 확인해두었기 때문에 조금 비장한 마음을 가져본다. 웬만하다 싶은 지역에는 곳곳에 학살과 폭력의 흔적이 있다. 좀처럼 무디어지지 않는다.

섯알오름에 대한 설명은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1948년에 시작된 4.3 사건은 1950년 6.25 전쟁 이후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학살의 기록을 갱신하며 이어졌다. 6.25 발발 이후 가장 큰 학살이 이곳 송악산 서편 섯알오름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6년이 지나서야 군당국에 시신 인도를 요청한 유가족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시신도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던 희생자 가족들의 하루하루가 어떠했을지, 살았어도 숨 죽이며 보냈어야 했을 순간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셨을지... 말 한마디, 글 한 줄 보태기조차 조심스럽다.
http://www.43archives.or.kr/viewHistoricSiteD.do?historicSiteSeq=9

4.3아카이브

4.3아카이브,제주4.3아카이브,아카이브,제주

www.43archives.or.kr


나는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하모체육공원에서 시작!

하모체육공원에서 시작하면 작은 마을을 지난다. 제주도 특유의 돌담과 낮은 지붕을 얹은 집들 사이사이 그보다는 훨씬 높은 건물이 들어설 것 같은 공사가 한창인 현장도 눈에 '들어온다',라고 적지만 거슬린다, 라는 편이 옳겠다. 걸음에 속도를 내다보니 해변에 닿았다. 하모해수욕장을 향해 걷는다.


하모해수욕장은 조용하고 아담하다. 지금은 휴가철이라 사람들로 붐비겠지.

하모해수욕장을 벗어나 송악산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너른 밭이 펼쳐져 있다.

농업에 쓰이는(혹은 쓰인 후 그냥 폐기되는) 비닐류, 플라스틱류의 종류와 양을 떠올리면 마음이 늘 무겁다.
뭔가 획기적인 대안이 나와야 할텐데 걱정이다.
대안 없이 그만 쓰시라, 말할 수도 없어 안타깝다.

우물 수질이 너무 안좋아 우물을 폐쇄했어야 했던 캄보디아 어느 NGO 담당자의 말이 떠올랐다.
마을 주민들은 그의 앞을 막아서며 우물 폐쇄를 반대했다고 한다.
목이 말라서 죽으나, 이 물을 먹고 아파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개발도상국에 살며 목도한 여러 가지 현실들을
올 한 해 대한민국에서도 마주하고 있어서 기분이 묘하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서는 지방균형발전에 대한 공약을 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까 한다.
(지금 이 시끄러운, 소위 '인물 검증'의 시간이 지나면 '공약 검증'의 시간도 과연 올까?)


이 호스는 밭 곳곳에 설치된 수도꼭지에 연결되어 물을 대는데 쓰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재활용될 수 있는 컨디션인가, 살펴보았지만, 구멍 뚫린 곳도 있고, 잘 모르겠다.
탄자니아에서 관개수로 사업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이 폐비닐은 재활용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알뜨르 비행장 가기 전까지 이런 쓰레기 더미를 제법 만났다.



학살이 자행되고 시신이 매장되었던 곳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하다.

이 비극과 아픔을 오롯이 겪었으니
이곳을 지나는 바람도 조심조심하는가 보다.
나도 걸음과 마음을 조심조심하여 이 곳을 지난다.

그리고 드디어 유명한 송악산 도착!

송악산에 올라서도, 송악산에 내려와서도 또 딴짓을 많이 했다.
어차피 하루만에 올레 10길 완주는 꿈도 꾸지 않았지만,
특히나 송악산이 있는 올레 10길은 하루 만에 걷기는 많이 아깝다.

송악산을 내려오니, 귤 한 봉지를 오천 원에 파는 트럭이 보여 반가웠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귤을 까먹기 좋은 곳을 찾아 안전히 나 혼자 소풍을 즐기다가
느릿느릿, 천천히 산이수동 정류장까지 걸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귤을 두 봉지 살 걸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