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4] 제주 올레 1코스 나머지 절반 - 어둑어둑한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시흥리 정류장에서 종달리까지

2021. 7. 14. 15:17한 걸음 한 걸음

지난 4월 초에 절반만 걸었던 올레 1코스 나머지를 걸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릴 일이 생겨서 어디로든 기분 전환을 하러 나가야 했다. 그러기엔 제주가 참 좋은 것 같다.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면 조용히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바다와 오름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 받아주고, 언제든 품을 내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한 해 가장 잘한 선택은 제주에서 지내기로 한 일이다. 

[2021.4.11] 제주 올레 1코스 절반 - 광치기 해변에서 목화휴게소까지  https://matika.tistory.com/52  

지난 4월 11일, 광치기 해변에서부터 목화휴게소까지 거꾸로 올레1코스를 걸었었다. 터진목의 아픔을 품고 웅장히 서있는 성산과 광치기 해변을 시작으로, 오조리 어느 카페에서 보낸 시간도 생각나고, 목화휴게소에서 버스정류장 찾아 헤매던 기억까지, 그게 4월 11일, 벌써 두 달 전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그때만 해도 제법 두툼한 겉옷을 걸치고 길을 걸었더랬다. 

 

6월 24일은 무척 흐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7월 중순의 장마철을 겪고 나니, 이때 흐린 날씨는 흐린 날씨 축에 끼지도 못했다만, 그때는 과연 길을 나서도 되나, 많이 망설였었다. 

 

버스를 타고 시흥리에서 내렸다. 소박한 버스정류장이 편안하다. 조금더 올라가면, 도장 찍는 지점이 나타난다. 

 

 

카카오의 도움으로 제작되었단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전 직장 동료에게 사진을 보내줘본다.

 

말미오름에 닿기까지 이런 길을 한참 걷는다. 

하늘은 무척이나 흐렸고, 물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을 시야에 가득 담고 걸으려니 괜히 무겁다.

내 머리 바로 위에 이고 지고 걷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심란하니 걸음도 무거운가. 

 

올레길 답지 않게 시멘트로 너무 빤득빤득하게 길을 닦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께는 농기계들이 들어와야 하니

이런 길이 비포장도로보다는 편하시겠지만,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덜 반가울 것 같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근사한 올레센터가 나타나고,

 

 

드디어 말미오름 오르는 길.

 

계단을 올라야 하니 숨이 차고, 숨이 차서 숨을 열심히 쉬다 보니 

복잡한 머릿속이 차분해진다. 

역시 걷기만 한 것이 없다. 

이런 심란한 시기에 제주에 있게 된 것이 정말 감사하다.

 

 

날이 흐려서 볼만한 사진은 없지만,

그래도 흐리면 흐린 대로 나름 운치가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둔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아름답다. 

군데군데 파랗고, 노랗고, 주황빛이 나는 건물들이 

녹차 카스테라와 초콜릿 같은 논밭에 둘러싸여 편안한 색감을 이룬다. 

 

 

길은 여러 개인데 안내판이 저렇게 되어있으면 

나는 아직도 당황스럽다.

 

 

이때는 비가 조금 흩뿌렸던 것 같다. 

 

 

드디어 알오름 오르는 길에 도착 

 

언덕 한가운데에 반갑게 올레 표지판이 서있었다.

여기는 다시 소풍을 와도 좋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득하다. 

 

 

알오름 정상.

 

날이 좋으면 더 아름다웠겠지만, 그래도 흐린 날은 흐린 대로 좋았다.

나는 울적한데 날이 너무 좋았더라면 어쩜 섭섭했을 것 같기도 하다. 

발바닥이 아프다. 돌아갈 시간이지. 

그래도 버스를 타려면 종달리까지 가야 한다.

 

지난번 4월 1코스를 걸을 때 종달초등학교도 그렇고 그 동네가 참 예뻐서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한참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아기자기 예쁜 카페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 제주살이를 해도 좋겠다 싶은데, 

나는 여전히 밤중에 뻥이요 과자가 먹고 싶으면 편의점에 후딱 다녀와야 하는 사람인지라, 

지금 살고 있는 숙소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드디어 종달리 도착.

겨우 두 번째 와 보는 곳인데, 왜 이렇게 반갑지. 

 

지난 4월에는 제주시 쪽에서 지냈었기 때문에

저기 반대편 정류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렸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201번 버스를 기다린다. 

 

4월에 나는 뭘 하고 지냈었지, 일기장을 펴본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편)

4월 10일엔 전 직장 동료가 제주에 놀러 와서 반갑게 만났었고, 

그다음 주에는 삼양해수욕장 에오마르 카페를 여러 차례 갔었고, 

삼양동이 좋아서 숙소를 구하러 몇 군데 돌아다녔던 기록이 있고, 

4월 16일에는 제주바당 광어회와 멍게를 시켜먹었었네.

포장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죄책감이 들었다고 쓴 한 줄이 눈에 들어오고, 

많이 걸으니 종아리가 아파서 압박밴드를 샀었다.

......

.....

지난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이 고맙다. 

그 시간의 부피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7월 중순의 나의 가슴에 묵직하게 전해진다. 

 

올 한 해를 보내는 휴식의 시간들도,

내년 또는 더 시간이 흘러 한참 후 어느쯤에서 지금보다 더 늙어 있을 나에게 위로가 되어 주겠지. 

 

그래서 이 기록들은 결국 그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더라도, 오늘처럼 흑백사진 같은 하늘만 만난 하루라 해도

열심히 한 자, 한 자 오늘도 기록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