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7. 12:17ㆍ한 걸음 한 걸음
세월호 4.16 7주기이다. 아직도 명백히 규명되지 않은 진상과 여전히 매일 매일 현실에서 마주해야 하는 잔인한 상처들을 본다. 제주 4.3도 그렇고, 일제 과거청산도 그렇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남기지 않고 묻어버려도 된다는 것이 역사적 사회적으로 학습이 되어서는 안 될 텐데 안타깝다. 이번 정부에 기대한 것 중에 하나가 세월호 진상규명이었는데 그것도 아쉽고. 이런 사건들로 누적되는 국가와 개인 간의 불신은 후대에 더 큰 위기를 만들어낼 것이고, 이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당면한 위기가 아니어서 그냥 쉬운 길을 택하는 거겠지. 쉬운 길로만 가다가, 인류는 이 모양 이 꼴, 코로나 때문에 전 지구가 마비되는 경험을 했으면서도.
암튼 가벼울 수 없는 마음으로 오늘은 제주 올레 21코스를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내가 지내는 숙소에서는 제주터미널이나 제주 공항까지 가서 101번 급행을 타고 세화 환승정류소에서 내려 해녀박물관까지 걸어가면 된다. 급행 버스 시간만 맞추면 오래 기다릴 일 없이 갈 수 있겠다.
유일하게 하루 만에 완주한 코스다. 지미봉이 있어서 쉬운 길은 아니었는데,
이 날은 어찌어찌하다 보니 완주하게 되었다.
해녀 박물관 - 도장 찍는 곳. 올레 여행자센터는 건물들이 죄다 예쁘다.
이곳 낯물밭길에서부터 석다원까지는 구좌읍 마을과 밭길을 따라 걷는다.
다음 농사를 위해 이렇게 손질을 해둔 밭도 있고
아직 수확하지 못한 작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밭도 많다.
이 동네는 무를 많이 심나 보다. 무가 썩는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뭉근히 코를 찌른다.
무로 해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요르단 암만 코스모 마켓에서는 무 500 그람에 6-7천 원 했었는데...
죄다 걷어가고 싶은 마음을 무 썩는 냄새로 저지시켜본다.
가는 길에 별방진 안내문도 만나는데 여기는 흔적만 보여주고
좀 더 가야 바다와 접해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복원된 별방진이 나온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별방진은 조선 중종 5년 1510년 제주 목사 장림이 우도와 함께 왜선이 와서 정박하는 곳과 가깝다 하여 김녕방호소를 철폐하고 이곳 하도리로 옮겨 구축한 진이다.
해당 진은 지형적으로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타원형 성곽으로 규모는 둘레 1,008km, 높이 3.5m 정도이며
(중략) 흉년에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는 별창을 갖춘 조선시대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큰 진성이었다. (이하 생략)
이렇게 후대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잘 남겨지고 알려지면 좋겠다.
아래 번호는 지울까 하다가, 이 분도 광고되시면 좋겠지 싶어서...
그나저나 티스토리 사진 편집 기능이 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
동네가 낮은 지붕들로 아기자기하고 눈길이 가는 집들이 많다.
걷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 썩는 냄새가 흙냄새, 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람과 섞인다.
석다원에서 야무지게 도장 찍기
석다원과 하도 해수욕장을 지나면 지미봉으로 향하는 우측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길이 좋다고 넋 놓고 직진하면 안 된다.
올레길을 계속 걷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파란색과 주황색에 민감해지고 뭔가 팔랑거리는 것들에 시선이 간다.
올레 리본이 팔랑거리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으면
나 같은 길치 방향치들은 엄청 헤맸을 듯.
이미 많이 헤맸고.
유채꽃이 아직 아름다운데 이 밭에서는 농부가 꽃을 밀어내고 있었다.
뭔가 계획이 있으시겠지.
이제 지미봉을 올라야 한다.
사라봉 오르다가 헥헥거린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래도 이 곳 정상에서 360도 제주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하니 올라야지.
정상을 오르지 않더라도 우회할 수 있는 길도 있다.
엄마를 모시고 온다면, 물론 여기까지 오시지도 못하겠지만 우회길로 가야겠지.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종달리
지미봉에서 내려 종달항과 마지막 코스인 종달바당으로 가는 길
드디어 도착. 멀리 목화휴게소와 지난번에 와서 사진 찍었던 버려진 펜션 건물이 보인다.
처음으로 하루 만에 완주한 올레길 - 뿌듯한 마음으로 도장을 찍고
숙소로 돌아갈 길을 검색한다.
종달 초등학교까지 일단 가야 하는구나.
종달초등학교도, 마을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작은 카페도 많고
여기도 왠지 발걸음을 서두르기 아쉽다.
외돌개나 성산 일출봉 같은 장관은 아니더라도
잔잔한 마을 밭담과 낮은 지붕으로 머리 위 하늘을 훤히 열어주는 동네의 작은 골목길,
물이 빠져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모래사장과 지미봉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올레 21코스 완주 기념으로 오늘 저녁은 시장에 들러 회나 떠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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