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 05:03ㆍ한 걸음 한 걸음
Farah라는, 보통은 여자에게 붙여지는 이름이라며 자신을 수줍게 소개한 남자 운전기사는, 어찌어찌하여 12월부터 친구가 되어서 나의 마지막 요르단 둘러보기 일정에도 함께 해줬다. 출국 전까지 남은 2주의 시간 동안 어디를 보면 좋을까, 사실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페트라 말고는 그냥 일정에 맞는 대로, 그때그때 누군가 얘기해주는 대로, 그게 인연이겠지, 싶어서 충동적으로 정한 요르단 둘러보기의 마지막 일정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곳과 사해였다.
Farah는 사해로 출발하는 전날까지도 연락을 해와서, 너 정말 사해에서 수영을 안할거냐며 재차 묻는다. 사해에서는 수영과 머드팩을 꼭 해야 한단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너 정말 사해에서 둥둥 떠보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겠느냐 묻는다. 그가 나보다 더 요르단을 떠날 정신자세가 된 사람 같다.
사해에서는 석양을 보는게 목표였다. 날씨가 걱정이 되었었다. 여행 중에 날씨가 안 좋았던 적이 제법 있어서. 안갯속을 달리는 차가 걱정되어 이러다가는 수명 단축되겠다 싶어서 한참을 쉬었다 간 적도 있었다. 와디럼에서 해가 지는 순간도 장관이었지만, 와디럼에서는 석양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지를 밟아보는 게 더 신났었다.
감사하게도, 날씨는, 온갖 전례없던 일들이 벌어져 지구종말 오나 싶었던 2020년도의 한 해를 마무리 짓는 New Year Eve에 가장 완벽한 석양을 선물해주었다.
다만, 석양을 제대로 볼 수 없을지 모르는 변수는 날씨뿐일 거라 생각했던 건 좀 안일했다. 그래도 그게 다 여행이고 인생이지 싶다. 석양에 시간을 맞추기 좀 아슬아슬했는데, 사해 파노라마보다 해변을 더 추천해주고 싶은 Farah의 열정을 내가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해변에서의 시간을 조절못하고 구불구불 파노라마 콤플렉스까지 올라가는 길에 Farah는 차를 세웠다. 이봐, 그냥 길가에서 해지는 걸 봐야 할 것 같아. 파노라마까지 10분은 더 가야 하는데, 그전에 해가 질 것 같아.
갓길에서의 태양도 물론 아름다웠다. 어디서 보든지...여기서 이대로 차를 세우고 서서 보든, 아니면 실내보다 따뜻한 암만 아파트 발코니에서 보든 모두 같은 얼굴의 태양인데, 무슨 상관이겠나, 싶기도 했다. 이게 요즘 나의 정신상태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왠지 운을 한 번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Farah, 갈 때까지 쭈욱 가보자.10분안에 해가 꼴깍 질 것 같지는 않아.
친절한 Farah는 말버릇인 'As you wish' 를 말하지만, 표정은 그 정반대인 얼굴로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뭔가 마땅치 않아 보이지만, 나는 구불구불 올라가는 길부터 이미 마음에 들어하던 참이다. 앵글만 잘 맞춰 사진을 찍으면 와디럼에서 찍었다 해도 믿을 만한 배경이다.
2020년도는 내게 친절한 편은 아니었지만, 2020년 12월 30일 하루는 온전히 내 편이었다. 나는 완벽한 석양을 원 없이 즐겼고, 마음속 소원을 빌었고, 보고 싶은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결국 2020년이 뒤늦게서라도 내게 좀 더 친절하고 싶었던게지. 왠지 운을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던 이 날의 충동을 계속 쭈욱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의 나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지만, 이 또한 온전히 내 편이었던 12월 30일의 선물이라 받아들여보기로 한다. 그래도 되겠지, 돈도 안 드는데.
Homepage | Panorama Dead Sea
A place where the blended hues of tinted skies magically reflect upon the salted surface of dead waters; the awe-inspiring views over the lowest point on earth shall teleport you well beyond the magical horizon. The reds, pinks, oranges and purples infused
panoramadeadseacompl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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