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 23:02ㆍ한 걸음 한 걸음
8월 20일 일기를 뒤져본다. 그 주간에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영화 <모가디슈>가 재미있어서 한 번 더 보러 갔었고, 예전 아주 예전 2004년도에 같이 일했었던 직장 상사가 제주에 오셔서 반갑게 만났고, 8월 18일에는 닭볶음탕을 했는데 너무 맛있게 잘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고, 8월 20일에는 올레 3길 다녀와서 잡채까지 해 먹었네. 8월 21일에는 예전에 같이 일했던 탄자니아 현지 직원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서 근황을 전해주었고, 8월 22일에는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바람에 집에서 또 요리를... 이날에는 오이 부추김치까지 담갔다는 기록이 있다. 무지막지하게 뭔가 해먹은 주간이다. 이제 와 다시 보니 재미있다. 이래서 일기는 짧게라도 써두는 게 좋은 것 같다.
올레 3길은 A와 B코스로 나뉘어 있다. 예전에 표선에서 신풍 사거리 지나 김영갑 갤러리까지 걸은 적이 있다. 오늘은 통오름과 독자봉, 김영갑 갤러리를 지나서 신산리 마을까페로 이동, 올레 3길의 중간지점 도장을 찍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신산환해장성 길을 놓치는 셈이라 좀 아쉽지만, 신산리 마을카페에서 온평포구까지 되돌아갈 체력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덜 야심차기로 한다. 나중에 다시 올 이유를 남겨둬야지.
통오름은 신산교차로에 입구가 있다.
신산 교차로는 엄청 정신이 없다.
영등포 교차로처럼 복잡한데, 물론 차가 많지 않아서, 거의 없어서 통과하기는 수월하겠으나
나는 이런 곳에서의 운전조차도 자신이 없다.
차가 많으면 어쩜 이런 교차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뱅뱅 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신산리 통오름은 정말 완만하다.
오름을 오르는 수고가 거의 없다.
날도 화창하고 걷기도 좋고.
통오름 정상에 이르러 온평포구 쪽을 바라보면 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통오름에서 짧은 소풍을 마치고 독자봉을 향해 걷는다.
신산 교차로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
여전히 매우 한적하다.
독자봉은 예전에 봉화를 올렸던 곳으로 홀로 서있다 해서 '독자봉'이라고 불린단다.
봉우리에 오르면 바다 쪽으로는 성산일출봉부터 표선백사장까지,
내륙으로는 한라산과 수십개의 오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진다.
이런 길을 조심해야 한다.
매트는 왼쪽으로 깔려 있어서 그리로 걷기 쉬운데 화살표 방향은 오른쪽을 가리키니 말이다.
독자봉에서 내려와 김영갑갤러리 가는 길
김영갑 갤러리를 지나고
8월인데 낙엽이 제법 길 위에 쌓였다.
계절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바삭바삭 낙엽 밟는 소리가 반갑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가을을 맞는 것이 거의 7년 만인 듯싶다.
드디어 해안가로 나왔다.
신풍 사거리를 건너는 신호등 없는 4차선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날 뻔했다.
중앙선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친절한 어느 분이 차를 세워 주셨는데
그 옆 차선을 달리던, 쌩쌩 달리던 차가 나를 못 봤는지 횡단보도까지 침범하면서 급정거를 했다.
저 차 속도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옆 차선의 차들이 모두 멈췄기 때문에
보행자가 건너는 걸 알아차렸을 법도 한데 말이지.
사고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나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잘 못 건넌다.
아주 멀리서 오는 차까지 기다렸다가 시야에서 차가 안 보여야 편안하게 건넌다.
놀란 가슴을 달래주는 평화로운 해안가를 천천히 걷는다.
좀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온평포구까지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신산리 마을카페까지만 걸어야겠다.
농개 (농어개)는 농어가 많이 들어오는 어장으로 입구를 막아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솟아나는 산에서 내려온 시원한 담수는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어 피서객과 낚시꾼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신산리 마을카페에 도착
이렇게 해서 올레 3길 중간 지점 도장을 다 찍었다.
여기서부터 온평포구까지 길도 아름다울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다시 이곳을 찾을 이유를 남겨두는 거라 생각하며
숙소로 되돌아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10월, 한 달 동안 할 일이 많다.
남은 올레길을 부지런히 걸어 올레 명예의 전당도 올라야 하고,
한라산 등반, 올레길에 없는 곶자왈과 제주 동쪽 오름들까지.
그런데 10월 넷째 주에는 사이버대학 중간고사도 있고,
11월 초 1주 정도 진행될 청소년 대상 지구시민교육 교안도 짜야하고
무엇보다 1년 휴직기간 동안의 밀린 기록과 사진도 정리해야 한다.
지난 10여 개월, 계획이 없이 살아보기를 목표로 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서서히 복직 시점이 다가오니 부득이하게 '계획'이 생기게 되네.
반갑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지만
일단 남은 시간은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신나게 보내야지
신나게 보내고 싶은데, 추자도 여행은 '신나게' 계획이 되지 않으니 ㅠㅠ
추자도, 정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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