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7] 세상 황공한 동네 산책길 - 올레 8길 위의 남바치물

2021. 8. 19. 23:45한 걸음 한 걸음

제주에 와서 제일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세상 황공한 동네 산책길의 축복이다. 뭐랄까, 동네 산책길이라기에는 너무 월드클래스 적인 올레 8길 가까이 살아서 누리는 행운이다. 나미비아 소수스플레이 사막 오후의 태양처럼 단 한치도 봐주지 않고 얄짤없이, 혹은 미친 듯이, 열기를 뿜어내는 지난 7월의 태양 아래서는 집이나 카페에 조용히 박혀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래도 광란의 태양이 서서히 기울어가는 늦은 오후는 동네 산책을 나서곤 했다.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매일 다른 하늘, 구름, 바람과 바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올레 8길을 황공하게도 '동네'라 부르며 산책을 다닌다. 

 

남바치물은 올레 8길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있는 용천수이다. 히든 클리프 호텔에서 예래 생태공원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처음 올레 8길을 걸었을때는 지나쳤던 곳인데, 동네 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궁금해서 내려가 봤다가, 그 이후에는 길을 좀 청소하느라 몇 번 더 다녔다. 처음 내려갔을 때가 이날, 6월 17일이었는데 이때는 거미줄 때문에 계단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되돌아갈까 싶은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써야 했다. 떨어진 나뭇가지로 어찌어찌 헤치며 길을 냈는데, 옷에 달라붙은 거미줄을 떼내느라 고생을 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가 보다. 호텔에서 산책하러 많이들 올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인가. 

 

 

 

계단이 이 정도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고 봐야하는데

출입금지 안내도 없고... 일단 계속 내려가 본다. 

 

 

거미줄이 너무너무 많았다. 거미서식지를 본의 아니게 훼손을 하고,

계단을 조금 내려오니 아늑한 느낌이 든다.

움푹 파인 계곡에 숨은 물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고려 1300년에 예래현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고려 1374년 최영 창군이 묵호의 난을 진압하면서 예래동을 연래 지경으로 지칭하였다. 민간에는 주로 '열리'라고 한다. 남바치물은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으며 남쪽의 밭에서 솟아 나오는 물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치가 뛰어나고, 근처에서 불상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신성시한 물이었음을 짐작한다. 


관광을 목적으로 일부러 남바치물만 찾기에는 다소 소박하지만,

올레 8길을 여유 있게 걷고 있다면 조용한 계곡 아래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대로변이라 성수기에는 차가 많이 지날 때도 있지만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아늑한 느낌이 들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싶어진다. 

거미줄을 쳐내야 하는 수고로움 따위는 길을 막지 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