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0. 18:43ㆍ별 일 없이 산다
2001년 8월, 10일 동안뉴욕을 방문했었다. 8명이었던가...일종의 견학으로 함께 다녀온 거라 개인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아주 잠깐 시간을 내서 헌책방을 둘러봤었다. 그 책방의 이름도, 위치도 잊었지만, 그 공간에서 은은하게 우러나던 오래된 책 냄새는 생생하고 그립다. 그때 샀던 책을 오랜만에 돌아온 집 책장 구석에서 발견했다. 20년, 20년이 흘렀다.
어디 가서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말하지 않는 편이다. 영문학을 전공하고도 많은 세월이 흘렀던 2014년까지 나는 영어로 제대로 된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편안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건 아니다. 영어 사용 능력은 차치하고, 그럼 문학에 대해서는 잘 아느냐. 이런 질문에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작가 - 제임스 조이스. 이후 2008년도인가, 가난한 유학생 시절, 저가항공 사이트를 매번 확인하며 처음 영국 바깥 여행을 간 곳은 더블린. 물론 제임스 조이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책을 모조리 읽었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다음 책장을 넘기기 위한 고비들을 이겨내지 못한 장편이 여럿 있다. 나는 그의 단편이 참 좋았고, 단편이 너무 좋아 다시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장편을 다 끝내지 못한 자괴감을 위로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고, 오랫동안 주인 없는 책장에 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준 대견한 이 책을 다시 열어보았다. 그의 단편 Dubliners 의 배경이 된 곳의 사진을 본다. 대학 시절 공부하던 단편집도 꺼내본다. 빼곡히 단어의 뜻을 옮겨 적은 흔적이 애틋하고 또 그립다.
2014년 10월 한국을 떠나기 전, 서울에 살던 집을 정리하면서 짐을 최대한 처분하기 위해 팔 수 있는 상태의 책은 전부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았더랬다. 이제 내 책장에 남은 책들은 그때 알라딘 서점이 사주지 않았던 책들뿐이다. 전자책에 절대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더니, 이제는 전자책이 아니면 좀 어색해졌다. 다시 종이책을 살런지는 모르겠지만, 알라딘이 외면해준 덕에 내 곁에 남아준 책들이…고맙고 미안하고…
조금 무겁겠지만, 다음 주 길을 나설 때 이 두 권의 책과도 함께 할까 싶다.
그리고 2001년도 9월, 예외 없이 야근으로 늦게 귀가한 어느 날. TV 화면을 꽉 채운 9.11 사건의 충격적인 장면 장면들은 제법 오랫동안 생생하게 남았었다. 지난 달, 저기에 다녀왔었는데…산 같던 빌딩이 무너졌었다며 망연자실해 있던 기억도...같이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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