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4] 공릉동, 공릉동!

2023. 7. 4. 21:00별 일 없이 산다

오랜만에 서울살이다. 2014년 이후 한달 이상의 서울 살이는 처음이다.

부모님댁에 짐을 모두 풀어놓고, 간단히 한 두 달 지낼 짐만 챙겼다. 에어비앤비를 알아보다가, 직방을 알아보다가, 부동산도 알아보다 모두 포기하고, 다시 에언비앤비로 돌아가 한달 지낼 집을 정했다. 서울에 거처가 없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과 직장생활 초반까지 주거에 대한 고민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축복이었다.

부동산을 통해 몇 군데 보러 간 집들, 그 중 특히 대학가 주변의 원룸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청년들의 서울살이가 정말 씁쓸하고 고단할 수도 있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들은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소위 '청춘'이라 불리는 세대의 고민과 어려움들은 청춘이라는 시기가 지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고민들은 다른 모양을 하고 그 다음 세대로 옮겨가 이어진다. 몇몇 후배들이 나에게 취직과 직업에 대해 묻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 고민은 내 나이가 되어도 계속된다는 얘기를 해줄까 말까 망설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춘'이라는 세대의 시기적인 정의는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많이 알려진 고시텔과 원룸부터 시작해서 다세대주택, 복층 아파트까지 둘러보았지만 서울 집값에 놀란 마음은 비용 대비 마음에 드는 곳을 쉽게 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하철역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공릉동을 정했고, 서울에 살던 예전에는 한 번도 가 볼 일 없었던 공릉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릉동 도깨비 시장과 경춘선 숲길을 알게 되었고, 기대가 전혀없이 시작해서 그런지 요즘은 공릉동에 푹 빠져 있다. 친구들이 공릉동 경춘선 숲길 따라 이어진 카페들을 소개해주었고, 공릉동 도깨비시장의 손칼국수집은 거의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이다. 거의 하루 한 끼는 이 손칼국수 집에서 해결했고, 경춘선 숲길은 한 번 다녀오면 얼굴이 빨갛게 익는데도 그만두기 어렵다.

해외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서울에서 살기는 싫다는 생각을 점점 해오던 터였다. 그렇지만, 서울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서울 성곽따라 걷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도시에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산이 많은 곳도 드물다. 한강을 보고 자란 나는 도심을 흐르는 강 중에서 한강만한 강을 아직 만나지 못했고, 서울숲이나 곳곳의 둘레길, 하천길 등 아름다운 곳이 많다.

오늘도 '내립니다, 내려요'를 여러 번 외치며 지하철 7호선 열차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을 밀어내고 밀리며 출근을 했다. 서울살이는 이렇게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서울의 얼굴과 순간순간 마주해야 하는 날이 선 현실이 존재한다. 특히 폭염이 연일 뉴스가 되는 요즘, 영등포 쪽방촌에 사시는 분들 이야기는 마음에 계속 걸린다.

모처럼 시작하게 된 서울살이가 아직은 재미있고 신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함과 편리함을 아직은 맘껏 누리고 있다. 이 편리함이 지나치게 불편한 순간도 있고, 다른 저소득국가는 둘째치고 같은 대한민국의 일부 상당지역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편리함이 낯설 때도 있지만, 일단 오늘 하루는 즐겨본다. 이제 곧 이런 편리함과도 작별이니. 

 

출처: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8306ee86-10ca-402a-8fec-78e82a92ff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