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9. 07:42ㆍ한 걸음 한 걸음
드디어 올레 425km 26코스의 마지막 길을 걷는 날이다. 아침부터 날이 흐렸지만, 늘 그렇듯이 흐리면 흐린 대로 아름다운 걷기인지라 주저 없이 아침 6시 반부터 일찍 길을 나섰다.
우도를 올레 마지막 코스로 걷게 된 이유는, 만만해서랄까? 어떻게 생긴 길인지 알고 있고, 그리고 총거리가 11.3km로 길지 않아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늘 다음에 가자, 다음에 가자 하다 보니 마지막이 되었다. 우도를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살지 않았던 지난 7년 전임은 분명하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고 아름다워서 이번도 기대가 가득했다.
성산포 가는 버스 노선을 미리 확인했다. 제주시 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는 긴 여행이다. 검색해보니 거의 두 시간이 걸리네. 급행을 한 번 갈아타야 하기도 하고... 제주 버스정보 시스템을 반드시 미리미리 확인해서 갈아타는 시간을 최소화해서 길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냥 되는 대로 타기로 했다. 버스 노선이 오래전에 걸었던 올레 1, 2, 3, 4, 5, 6, 7 코스를 모두 지나는 아름다운 길이라서 드라이브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서귀포 구터미널에 있는 식당 이름이 9 터미널이다.
외관이 예쁘고 독특해서 평소 오갈 때마다 시선을 끌었었는데
사진을 찍어 둔 적은 없어서 이번 기회에 찍어본다.
드디어 성산포 여객터미널에 도착.
날이 점점 흐려져서 버스 타고 가는 길에 혹시 배가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전화로 문의할 수도 없었다.
배를 탈 때는 반드시 신분증 필수!
가파도에서의 신분증 분실 사건을 떠올리며 신분증을 잘 보관하자, 보관하자 되뇌며
지갑 안에 넣는 것을 여러번 확인한다.
꼭 초등학생 때 학교 가기 전날 가방 싸는 기분이랄까.
터미널에 9시경 도착해서 나는 9시 반 배를 탔다.
나오는 배는 시간에 맞게 아무 때나 타면 된다.
이 날은 사람이 많아서 그랬는지 시간표보다 훨씬 더 많이 배가 운항을 해서
성산포로 나올 때는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웬만한 제주 지선버스 정도로 자주 있었던 것 같네.
돌아가는 버스 시간도 우도 터미널에서 다시 확인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
드디어 마지막 올레길 시작점 도장을 찍는다.
이 도장 찍는 맛도 이제 오늘이면 끝이구나.
정말 아쉽다.
그런데 말이지, 천진항 입구가 좀 이상해졌다.
이렇게까지 관광지가 되었나...
가파도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왠지 씁쓸한 느낌이랄까.
솔직히 천진항에서는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전기차에, 자전거에, 보트체험에...코로나 이전에는 이것보다 더 했겠지 싶다.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멋진 곳이 되었을 텐데...
그리고 우도 정도 크기면 굳이 전기차가 필요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항구에 내려서니 어느 경찰관이 전기차 탈 때 사고가 자주 나니 어찌어찌하시오, 사진을 반드시 찍어 두시오,
확성기로 설명을 하고 계셨고,
나는 올레 도장을 찍자마자 천진항을 탈출해 하우목동항 방향으로 잽싸게 걷기 시작한다.
이제는 체력도 많이 좋아지고 걷는 속도도 제법 빠르다.
한라산까지 다녀오고 올레도 거의 다 걸었으니 걷기는 이제 문제없다 ^^
홍조단괴 해변도 어찌나 정신 사납던지.
제주에 운치 있고 자연과 조화롭게 외관을 꾸민 식당이나 음식점이 얼마나 많은가.
우도는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업주끼리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함 하셔야 할 것 같다.
너무 정신없고, 아름답지 않고, 해변의 정취를 싹 다 깨부수고 있다.
그래서 또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길을 걷기 시작.
올레 걷는 사람을 아주 가끔, 아주 아주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관광객들은 거의 전기차로 다닌다.
이 전기차 덕분에 올레를 걷는 사람들은 길을 건널 때도 주의해야 하고 잘 살펴야 한다.
올레길을 벗어나 전기차가 안 다닐만한 곳으로만 골라 다니고 싶지만,
일단 중간 도장을 찍어야 하니 거기까지는 가보자, 싶다.
이곳은 하우목동항 올레 도장 찍는 곳이다.
올레 1-1길은 천진항에서 시작해도 되고
하우목동항으로 도착하는 사람은 여기서 바로 시작해도 된다.
여기부터는 돌담을 끼고 우도 밭길을 걷는다.
전기차와 자전거 없이 드디어 조용하게
늘 걷던 대로 길을 걸을 수 있다.
그 큰 제주섬의 올레길보다 이 작은 우도의 올레길이 왠지 더 부산스럽고 정신없이 바쁘다.
듬성듬성 구멍이 난 밭담도 아름답고
조선 숙종 때 국유 목장이 설치되면서 국마를 관리 사육했다는 명성답게
말도 제법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국마를 왜 우도 섬에까지 와서 사육했을까.
배로 운반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곳 목장에서는 말에 좋은 뭔가 특별한 것들이 있나 궁금하다.
일기 다 쓰고 있다가 검색을 해봐야지.
흐리지만 걷기 좋은 조용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싶었는데
멀리서 관광지 특유의 음악소리가 들린다 ㅠㅠ
빨리 걷자.
그리고 중간 도장 찍는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아.... 이곳도 빨리 지나야겠구나.
공사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해변이 조화롭지 않게 들어선 건물들과 주차장으로 정신이 없다.
제주에 이런 해변 처음이다.
여기서는 사진을 거의 안 찍었다.
그리고 주의할 것은, 우도는 제주보다 더 관광객으로 붐빈다.
제주에 몇 십만씩 관광객이 입도를 한다는 뉴스를 봐도 체감하지 못했는데
다 여기 우도에 와 계시는가...
하지만 이곳을 지나서 우도봉과 우도등대를 지나는 길은 제법 걸을만했다.
물론 전기차는 조심조심
우도봉은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서 기대가 된다.
별로 높지도 않고, 계단도 아래 사진의 경사가 제일 가파른 정도고 비교적 완만해서 걷기 좋다.
관음사와 저지오름 분화구도 다녀왔으니 이쯤이야 ^^
우도봉에 오르기 위해 우도를 왔나 보다.
여기까지 걸어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우도 정상과 우도 등대, 그리고 세계의 등대를 꾸며놓은 공원에서 보냈다.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전기차는 다닐 수 없는 곳이라서 더 좋았다.
우도에서는 솔직히 우도봉을 제외하고는 사진을 찍을 마음이 내키는 곳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까지 관광지화 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우도가 이상해졌다.
우도봉을 오기 위해서 우도를 다시 찾겠느냐고 묻는다면,
성산 근처에서 지내게 될 경우는 그렇다, 하겠지만
만약에 성산항에서 멀리 산다면,
지금처럼 서귀포 중문에서부터 성산항까지 거의 두 시간 걸려 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면...
다시 올 생각은 없다.
우도는 관광사업을 다시 고민하고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것 같다.
우도의 절경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ㅠ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도를 떠났다.
올레 마지막 길인데 좋아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서 아쉬운 마음이 큰 것이 속상하지만,
또 그런대로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겠지.
드디어 올레길을 다 걸었다.
올레 패스포트에 찍힌 도장이 정말 자랑스럽고,
올레길 일기를 다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추억하기 쉽게 기록으로 틈틈이 정리해둘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성산항에 도착하자마자, 물론 버스 안에서였지만 100미터 전력질주하는 마음으로
서귀포 올레센터로 달려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도록 신청을 했다.
올레 안내하시는 분이 인증서에 적힌 글을 올레펍에서 큰 소리로 읽어 주셨다.
펍에 있던 다른 올레꾼들이 함께 박수를 쳐주셨다.
무슨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받듯이 일어나 사방에 목례를 했다 ^^
생전 안 하던 짓이지만, 이 순간만은 낯선이에게 진심을 담은 인사였다.
당신은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곶자왈, 사시사철 푸른 들과 정겨운 마을들을 지나
평화와 치유를 꿈꾸는 제주올레의 모든 코스 약 425km를 두 발로 걸어서 완주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제주올레 도보 여행자입니다.
2021년 3월 31일부터 10월 20일까지 띄엄띄엄 산만하게 해찰하며 제주를 걸으면서
나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제주올레 도보 여행자가 되었다.
건강만큼이나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다.
425km를 걸으면서 나 자신을 극복하며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마구 불태우는 그런 느낌은 없었다.
완주를 다 하고도 그런 느낌은 안 생긴다.
안 생길 줄 알고 있었다.
그냥 아름다운 제주를 도보로 구석구석 걸어본다는 것이 좋았고,
그리고 완주를 하고 나서 이 일기를 쓰며 되돌아보니
가장 뼈아프게 느낀 점이 있다면,
쓰레기 줄이자, 쓰레기를 아무 데나 절대 버리지 말자, 쓰레기 줍자!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 사진만 정리를 해서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
아직 일기를 쓰지 못한 올레길도 많은데...
이 글을 쓰는 오늘, 나는 제주를 떠날 날을 이틀 앞두고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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