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9. 15:00ㆍ별 일 없이 산다
어쩌다 보니띄엄띄엄 살게 된 제주에서 여행자에서 거주자로 숙소 구하기
여행하면서 지내는 숙소에는 그다지 예민하거나 까다롭지는 않지만, 청결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들어서자마자 청소를 다시 하는 편이다. 청소를 다시 하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물론 혼자 있을 때만 난리법석 청소를 하고, 누군가가 있을 때는 결벽증환자로 몰릴까 싶어서 더럽게 지낸다.
침구는 호텔인 곳과 호텔이 아닌 곳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다. 자주 쓰는 숙소 예약사이트는 부킹닷컴과 에어비앤비가 있는데, 호텔이 아닌 숙소가 대부분인 에어비앤비에서는 리뷰를 통해 침구에 대한 평을 반드시 확인한다. 워낙에 출장도 많고 자주 돌아다니다 보니 단기 숙소를 찾는 일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고 비교적 쉽게 만족스러운 곳을 고르는 편이다.
처음 제주에 왔던 4월은, 일단 시내에서 제주 살이가 어떤지 여기저기 돌아다녀보자 싶어서 제주시 연동에 있는 레지던스를 별 고민없이 골랐고, 혼자 지내기는 적당했지만 너무 좁았던 공간을 제외하면 청소기, 세탁기, 냉장고, 부엌 등등 모두 갖추고 있어서 편리했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곳도 바로 앞에 있었고 (제주시 쓰레기 분리수거 매우 마음에 든다). 버스정류장도 여러 곳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대형마트가 아닌, 개인사업으로 보이는 대형 마트가 곳곳에 있고 제주시 중심가라서 그냥 서울처럼 익숙한 느낌.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5월에도 있어보자 하고, 부킹닷컴과 에어비엔비를 뒤졌다. 올레길을 걸을 예정이라 대중교통이 편리해야 하고, 그리고 비교적 장기투숙이니 부엌이 있었음 하는 것과 주변에 편의시설, 특히 마트가 가까워야 한다는 단순한 조건으로 찾아낸 곳이 었는데 비용도 그렇고 만족스러웠다. 4월에 제주시에 있으면서 올레 14길-21길까지 군데 군데 걸어봤기 때문에 이번엔 서귀포쪽 올레를 걸을 계획으로 서귀포 중문쪽에 숙소를 정했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이면서 침구에도 깨끗하고 향기 좋게 정돈되어서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5월이 금세 지나고, 6월과 7월도 있어볼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부동산을 통해서 6개월 숙소를 구할 걸 그랬어, 싶지만,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 와서 어쩔 것인가? 뭐 하나 바꿀 수 없는데.
일단은 두 달이라는 기간이 생겼으니 부동산도 가보고, 제주시 한달살이 숙소만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사이트나 포탈 사이트의 제주 한달살이 커뮤니티도 주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단기 숙소는 비교적 쉽게 구하는데, 조금 더 ‘거주’의 느낌이 강해지다보니 쉽지가 않다. 욕심이 생기는 거지.
5월에 지낸 숙소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100% 대 만족이 어려운 이유는, 왠지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물론 편견이지만, 난 제주 사람이 아니니까…제주에 있다 하면, 왠지 막 산 중간이나 막바로 해변에 위치해서 아침에 눈뜨면 차 소리 하나 없이 오로지 새소리만 들리고 파란 하늘 펼쳐져 있고 숲내음 가득하고 뭐 그런 숙소. 그런데 그런 걸 은근 기대하면 숙소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제주도 매우 발달한 곳이라서 이런 곳을 찾으려면 시내에서 멀리 나가야 한다.) 일단은 그런 곳 대부분은 차가 있어야 하고, 대중교통이나 편의시설을 다니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매우 비싸다. 심히 비싸다.
하지만, 월 2백, 3백씩 하는 그런 화려한 숙소들과 내 경제적 사정을 떠올리며 괜히 우울해질 필요없다. 내가 가장 마음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수준에 맞는 곳을 찾아서 즐겁게 지내면 될 일이다. 세상살이 바깥 일로도 이미 심난하기 쉬우니, 내 마음가짐으로 평안해질 수 있는 내적인 문제들에는 지나치게 에너지 낭비하지 않기로 하자.
여행자 모드에서 약간의 거주자 느낌이 더해진 숙소 찾는 얘기로 다시 되돌아 와서,
일단 부동산은 제외하기로 했다. 수수료도 그렇지만 그들은 그다지 두 달살이 거주자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한달살이 전문 사이트와 포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몇 군데 후보를 추려봤는데, 문제는 내가 6월부터 살고 싶다고 해서 5월 중순에 문의를 해봤자 너무 늦는다는 점이다. 이미 대부분의 괜찮은 단기 숙소들은 모두 예약이 끝나있다. 여름은 성수기이기도 하고, 서퍼들이 엄청 많이 오나보다. 올레 7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숙소들을 제법 많이 만났고, 직접 방문해서 숙소가 비어있는 경우는 구경도 해보고 가격도 물어봤는데 서퍼님들이 예약을 많이 해놓으셨더라고. 헛걸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예쁜 펜션들 구경하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보니 어느 정도 비용대비 시설에 대한 감이 잡혔다. 물론 내가 명백히 육지사람인게 드러나기 때문에 외지사람 프리미엄이 붙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둘러봤던 곳은 대략 이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물론 진짜 진짜 비싼 곳은 아예 처음부터 제외)
- 호텔&레지던스 스타일: 시설은 편리하지만 비교적 공간이 좁다. 가격은 90만원 부터 수준에 따라 다양
- 펜션&원룸&독립공간: 60만 원~300만 원까지 가격과 옵션이 가장 다양했다.
- 게스트하우스: 개인 부엌이 없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으나 가장 저렴하게 지낼 수 있음
- 부동산을 통해서 알아본, 옵션 거의 제로 상태의 원룸 아파트: 월 35만원부터 (수수료 제외, 단, 연세처럼 한 번에 다 내야함)
이렇게 해서 위에서 얘기했던 조건에 맞춰서 맘에 드는 곳을 정리해보니,
서귀포 칼 호텔이 있는 검은여 정류소쪽 펜션 두 곳, 법환포구 한 곳, 위미리 바닷가 한 곳, 서귀포여고 옆 한 곳, 중문 관광단지 한 곳으로 추려졌다. 내가 맘에 드는 숙소들의 가격대는 내 예산보다 높았고, 그리고 살짜기 편의시설 접근성이 낮았다. 버스도 정류장이 근처에 한 곳만 있으면 시간을 길에 많이 써야 하는데, 물론 지금 시간에 쫒길 일이 없으니 괜찮긴 한데 자주 이용해야 하면 불편할 일인지라 꺼려지기도 했다. 역시 차가 있어야 하는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당시 지내고 있던 숙소(5월숙소) 호스트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두 달 숙소를 구한 다는 얘기를 듣고, 당시 쓰던 방보다 부엌이 좀더 큰 방을 저렴한 가격으로 소개해주었다. 비슷한 가격으로 중문쪽 다른 펜션도 있었는데, 주변에 버스정류장은 많았지만, 숙소동 자체가 약간 외져서 여자 혼자 지내기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고려해야했고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은 아무리 늙어도 여전히 여자이기에 고려해야한다.) 차가 없으니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 좋은 도로 상황도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한 것은, 자연에 둘러쌓인 집이냐, 편리한 집이냐. 생각보다 어려운 고민은 아니었다. 자연에 둘러 쌓이고 싶으면, 바람 소리 새소리 실컷 들을 수 있는 부모님댁 아랫채에 그냥 있으면 될 일이다.
결국, 비용도 아끼고, 편리도 추구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고, 2021년 6월과 7월도 제주에 있기로 결정을 했다. 계획없이 살아보기로 했는데, 이제 적어도 두 달의 계획이 생겨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렇게 해서 띄엄띄엄 제주살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수 있게 되었다 ^^
(2021.6.9. 요즘 올레길을 걷다가 가끔 동선이 가까울 때는 예전에 둘러본 예쁜 펜션 근처를 걸어본다. 역시 생활을 위해서는 지금 있는 숙소가 훨씬 좋은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밤이건 낮이건 갑자기 뽕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 구할 수 있는 곳이 최고다. 소다맛 뽕따 아이스크림, 너무 너무 좋다!)
요즘 중문 색달해수욕장은 서퍼들로 붐빈다.
저 분들이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신 덕분에 놓친 숙소 몇 곳은 참 아쉽다.
숙소 구하기는 뜻하지 않게 간단히 해결되었지만,
그동안 발품 팔며 예쁜 펜션 구경도 잘 했고,
역시 집 나오면 먹고 사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또 한 편으로는 부모님집이 내 집은 아니니, 나는 지금 집도 절도 없구나, 현실감각도 생긴다.
암튼, 감사하게 주어진 시간이니 즐겁게 잘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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