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2] 버려진 장갑
도보이동이 허가된 시간을 이용해서 산책을 다니기 시작한 지 2주가 되었다. 처음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아직까지는 이렇게 바깥공기를 진짜 바깥에서 들이마실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하긴 하지만, 이게 또 언제 당연한 일상으로 무감각하게 느껴질런지는 아직 모르겠다.
산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사소한 사진을 찍는다. 요즘 눈에 꽂힌 것은 방범창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패턴들이 많다.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방범창보다는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방범창 정도는 천편일률적이어도 괜찮음.
코로나 트라우마로부터 용기를 내어 산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칭찬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그리고 또 하나, 버려진 일회용 장갑이었다. 마스크는 구하기 어려우니 당연히 쓰레기로도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일회용 장갑은 많다. 그래서 산책길에 늘 함께 나서는 내 스마트폰 앨범에도 버려진 장갑들 사진이 제법 들어있는데,
BBC 기사를 읽다가 이미 너무나 잘 사진을 찍어 올린 작가를 발견했다.
In pictures: Discarded disposable gloves
Photographer Dan Giannopoulos on the discarded disposable gloves he has been finding on his daily walk.
www.bbc.com
안전과 생명 앞에서 예방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 위해 남용하는 부분도 있겠고… 앞으로는 쉽게 분해되는 자연친화적 일회용품 생산에도 더 많은 연구와 투자가 있으리라 믿고 싶어 진다.
지금 내 앞에 당면한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다. ‘편리와 이익’라는 이름으로, ‘불편과 손해’가 너무나 단순하게 일차원적으로 단정된다. 줄어들고 있는 빙하와 빙하 사이에서 북극곰이 발 디딛을 곳이 없어 어찌할 바 모르는 장면은, 지금 당장 내 앞의 편리함을 결정하는 상황에서는 잠시 잊혀지기 일쑤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벌써 몇 년째 외롭게 분리수거해서 내 다 버리고 있고, 슈퍼에서 한 번 식료품을 살 때마다 엄청 쓰게 되는 비닐봉지를 잘 정리해서 모았다가, 다시 슈퍼 갈때마다 챙겨가서 재활용을 위해 바코드를 떼기 쉬운 곳에 붙여 달라고 하고, 장바구니도 꼬박꼬박 잘 쓰고, 나름 노력한다고 하지만, 내가 그동안 타고 다녔던 비행기, 혼자서 출퇴근 하며 타고 다녔던 자동차, 기분전환 한다며 사서는 입지도 않고 쌓아두었던 옷가지들, 좋아한다는 명목으로 불필요하게 사들인 기텡게 (African fabric)로 만든 옷가지와 소품들, 새로운 요리를 시도한답시고 낭비하고 버린 모든 식자재와 음식물 쓰레기들…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오늘의 보이지 않는 적 - 코로나와 싸우기 위해, 머지 않은 미래에서 만날, 또 다른 재앙의 씨앗에 물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릴적 보았던 SF 영화나 비교적 최근의 재난 영화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요즘,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더 깊이 공부해볼까를 찾고 있던 노력들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뭔가를 크게 놓친 것 같고, 기본적인 것만 잘해도 될 것 같은데 기본적인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면서 앞으로 이렇게 할 거면 계속 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 버려진 일회용 장갑들이 더 마음에 남았다. 의미있게 쓰이고 버려진 것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위안만을 위해서 쓰다 버려진 것도 있을 텐데, 저 다양한 모자이크 속의 장갑들이 우리 인생들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하는 과도한 비약까지 이르러서야 나는 머릿속 생각을 털어내려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어 본다. 코로나 멜랑꼴리야, 코로나 멜랑꼴리, 하며 생각을 전환해 볼까 싶어 나를 지켜보면 어느새 입에 뭔가를 넣고 있다. 코로나로 우울해지고, 과식하고, 반성하고, 지루해하고, 두려워하고…미치는 영향이 정말 크다. 코로나 이후의 심리상태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일찍 잠이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