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8] 또, 사소한 하루 - Grand Huseini Mosque
1. 산 넘고 또 산 넘고... 산 넘다가 인생이 다 간다.
큰 고비를 하나 넘겼다.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각오하고는 있었으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 좀 더 바빠질 것 같고, 앞으로도 더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인간 존엄성 존중이라는 큰 가치관에 반하는 거대한 악이 아니라 만성적인 비효율적 시간관리, 관료적 행정절차, 경직된 의사결정구조 등 해결이 가능한 습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다. 그래서 더욱 나는 어떤가 되돌아보게 된다.
2. 도매시장에서 구입한 기분전환
코로나 봉쇄, 통금, 자가격리, 감금 등등 그게 뭐가 되었든간에 암튼 그게 해제되고 나서 처음 콧바람을 제대로 쐬었다. 사무실 물건 구입할 것이 많아서 도매 시장을 가야 했는데, 직원들만 보낼까 하다가 나도 구경삼아 함께 길을 나섰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만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도매 시장은 Grand Huseini Mosque 뒷 편에 있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앞 쪽도 될 수 있겠다. 이 모스크는 AD 640년 경 처음 건축되었다가 1932년 킹 압둘라 1세가 재건했고, 암만 투어 역사유적지에 포함되는 모양인데, 더 자세한 설명은 검색할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생략. 1932년에 지어졌는데도 아직 짱짱해 보인다. 아랍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내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성별에 따른 출입구가 나뉘어 있다.
https://universes.art/en/art-destinations/jordan/amman/tours/02/al-husseini-mosque
Al-Husseini Mosque. Art Destination Jordan, Amman
From the Roman Theatre along the Forum, Odeon, and Nymphaeum, the tour through downtown goes until the Jordan Museum and Ras Al Ain urban complex.
universes.art
모스크 바로 옆에 있는 각종 향신료 가게.
같이 간 동료들은 부지런히 구매해야 하는 물건을 돌아보러 다니는 동안, 나는 이 향신료 가게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정말 제대로 된 콧바람 쐬기였다. 친절한 주인 덕분에 각종 향신료의 향을 하나하나 소개 받고, 맛도 보고 - 그러다가 당연히 그의 상술에 기꺼이 넘어가 수제 비누도 몇 개 사고, 건조한 피부에 좋다는 오일도 샀고, 물론 알지, 내가 호객이 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몇 개월 집에 갇혀서 맨날 똑같은 냄새와 똑같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가 강렬한 이 지역의 향신료를 뇌혈관 곳곳까지 전해지도록 깊이 들이마시면, 짧은 그 순간 무시할 수 없는 잔향과 여운에 휩싸여서 사게 된단 말이다. 그 힘은 수 초의 찰나에 잔지바르 스톤타운 마사지 가게에서 주로 쓰던 마사지 오일의 향부터 시작해서 수년 전 어딘가를 여행하며 만났던 온갖 향들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만난 동료들이 내가 이걸 얼마 얼마에 주고 샀다는 얘기를 듣고는, 너 바가지 썼어, 했지만, 바가지를 쓰고 싶었다, 써야 했다, 아니 쓰게 된다, 그 순간에는.
행복하면 된다. 밥에도 넣고 카레에도 넣고 하면 좋다고 해서 산 말린 레몬은 여전히 아무 곳에도 쓰이고 있지 않지만, 그 순간 생필품이 아닌 무언가를 사고 나니 기분 전환도 되고 좋았다. 그러면 된거다. 나는 이런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3. 실수 많은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
마흔 중반이 되면 뭔가 좀 달라질 것 같았다. 판단력도 좋아지고, 의지도 강해지고, 지혜와 통찰력이 무협지의 주인공 영웅 마냥 증강하고, 내공도 쌓여 왠만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갖게 되는 줄 알았다. 어릴 적에 지켜본 마흔 중반의 어른들이 그러하지 못하셨던 것을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컸나 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20대의 나에서 단 한 자락도 성장하지 못한 그대로이다. 나쁜 습관들도 여전히 그대로...세월과 함께 쌓인 경험도 대단치도 않고, 내가 나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대로 늙지 못했다. 혼자 있을 때의 나를 누군가가 본다면,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추하고, 게으르고 멍청하다. 직원 미팅에서는 앞에 나와 거창하게 이러저러한 일들을 해야 한다며 일정 점검과 지시를 하는 나는, 집에서는 침대에 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유튜브로 '놀면 뭐하니 싹쓰리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신이 나서 몸을 들썩 거리는 바람에 쏟아진 감자칩을 대충 손으로 주워 먹고, 당연히 깨끗하게 치워지지 않아 남은 과자 가루가 몸에 묻으면 그걸 또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 찍어 그냥 바닥에 털어버리거나... 뭔가에 지나치게 정신 팔려 있을 때는 입으로 가져간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에게도 잘 못을 많이 했다. 친구의 마음도 속상하게 한 적도 많았고, 부모님 속도 많이 아프게 하고...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서 저지른 실수도 많았고...
이런 내가 앞으로도 완벽하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요즘은 그냥 이런 나를, 나의 허점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훈련이 평화로운 노년을 맞이하는 시작인 것 같아서 마음 비우기를 열심히 하는 중이다. 과거의 나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그리고 그런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적어도 나만은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기를.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를. 모두에게 돌팔매를 맞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감당해야 할 것은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살아갈 날동안에는 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어마무시 대단한 사람도 아니면서 괜히 요즘 마음이 요동친다. 모두에게, 그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