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4] 송령이골 -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면, 정말 그렇다면...
모든 생명은 정말 존엄한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모든 죽음도 우리는 정말 존엄하게 대하고 있는 것일까? 송령이골 답사는 내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4.3 희생자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오늘 8월 30일, 지구 저편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참혹한 현실을 뉴스로 접하면서 모든 생명이 정말 존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 부여되거나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70여 년 전 제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숨 죽여 같은 질문을 했을 것 같다. 이념에 의해, 혹은 그 이념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공포에 직면해서 어쩔 수 없이 토벌대와 무장대로 나뉘어 각자 다른 모양으로 죽어가면서도,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정말 존엄한 것일까?
서귀포 하원삼면 원혼 합동위령제가 열리는 7월 24일은 우리 4.3 유적지 시민지킴이단의 답사도 계획된 날이어서 제주시 답사 일정을 서귀포 송령이골로 바꾸고 참여하기로 결정이 되었단다. 서귀포에 사는 나는 제주시까지 갈 필요 없이 바로 삼면원혼제단이 있는 법화사로 가기로 했다. 집 근처 정류장에서 655번을 타면 걷는 시간까지 합쳐서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하원삼면원혼 위령제는 당시 예비검속으로 희생된 서귀면, 중문면, 남원면 등 세 개의 면(三面) 지역에서 희생되었으나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는 원혼들을 합동으로 기리는 제사라고 한다. 이것도 2000년대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고. 서귀면 등 세 지역은 당시 서귀포경찰서 관할지역이었고, 예비검속 된 주민들은 서귀포경찰서에 의해 서귀포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되었다가 해병대로 넘겨져 집단 학살되었다고 한다. 아래 링크에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
'시국'은 정말 좋아진 걸까... 제주4·3의 그늘을 마주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2812&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시국'은 정말 좋아진 걸까... 제주4·3의 그늘을 마주하다
[제주4·3 유적지 시민지킴이단, 유적지 답사기 ②] 국가폭력 희생자 위령비 꼭대기의 무궁화
www.ohmynews.com
그리고 송령이골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로.
https://www.nocutnews.co.kr/news/5554363
[4.3 흔적에서 교훈으로]4.3의 그늘과 현실…의귀리의 유적지들
제주에는 4.3유적지를 비롯해 수많은 다크투어 유적지가 존재한다. 제주는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이지만 제주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기억의 전승이 우선 필요
www.nocutnews.co.kr
무장대는 4.3 공원에 위패를 올릴 수 없다. 그들은 예외 없이 가해자로 여겨졌다. 이념 갈등이 조직적으로 사회통제의 수단이 되었던 암울한 시대에는 가족 중 무장대가 있다는 것은 사회적 매장을 뜻했고, 실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무장대의 죽음은 잊혀야 했고, 드러날 수 없었다. 좌와 우를 나누고 무장대와 토벌대를 가르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되어 아슬아슬하게 생존을 결정했다. 어떤 폭력은 인정되고 또 다른 어떤 폭력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나의 생명은 더 존엄하고, 너의 생명은 덜 존엄할 수밖에 없는 아픈 순간들이 도민들을 갈라놓게 된다. 이전에는 모두 이웃사촌이었고, 모두 건너 마을, 앞 마을, 뒷마을 사람들이었을 텐데. 누가 이런 분열을 조장했는지, 우리는 분명히 물어야 할 텐데, 이러한 질문조차 용납되지 않던 수십 년을, 이곳 마을 사람들은, 제주도민들은 견뎌왔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송령이골은 사전 정보가 없으면 여기가 무덤인지 뭔지 대체 모르고 지나칠 수밖에 없다.





사진은 더 찍을 것이 없을 정도로, 이게 다다. 오랫동안 방치되었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살펴봐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한다.
제주 4.3 다크투어에서 만든 송령이골 소개로 오늘 일기는 여기서 줄이지만,
송령이골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2021년도 나의 제주살이는 이미 의미가 충분할 정도다.
'화해'와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줄 알기에 더 마음이 복잡스럽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관계에서도 싸우고 삐져 말 안 하고 대화가 단절되어 냉전이 오래갈 경우
어떻게 다시 회복해야 할지 고민되고 답답한 법인데,
이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직도 핏기 어린 상처와 생존의 공포로 떨어야 했던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생생할 이 사건 앞에
어떻게 평화와 상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사람이 미우면, 정말이지 목소리도 듣기 싫은 사람인데,
이 소갈머리로 대체 무슨 평화를 얘기한단 말인가, 분수 모르는 짓이지.
그러니 나는 이 큰 명제 앞에서 손가락 하나 어쩌지 못하는 매우 나약한 인간이지만,
그냥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4.3 유적지 시민지킴이단에 대해 마음을 다한다.
장마와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은 활동 중단이지만, 이제 두 번인가 남은 답사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녀야지.
사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레길도 걷고 있다.
물론 나는 엊그제도 엄마와 전화로 한바탕 싸우고
아직도 삐져서 말 안하고 툴툴대는 철딱서니 없는 딸래미지만,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내야지.
과거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리 저리 부딪히고, 엉망진창 화해건 용서 건 내 마음대로 산다며 고집불통이지만,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부끄럽게 살고 있다. 이 나이를 먹고도 ㅠㅠ
모든 생명이 존엄하느냐는 질문에, 그래서 너는 모든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떳떳하게 답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인간이지만,
그래도...그런 나를 존엄하다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냈고, 내일도 살겠지.
언젠가는 쥐톨만큼이라도 철이 들겠지.







